'K팝은 세계 주류'…2021년 대중음악 연말 결산

AMA 대상·그래미 후보, 기록 정점 찍은 BTS
K팝 수출 사상 첫 2억 달러 돌파…'아카이빙' 원년
악단광칠·동양고주파, 한국 음악 세계로 세계로
키워드 10개로 돌아본 올해의 대중음악계②

입력 : 2021-12-29 오후 5:38:4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2년 간 '팬데믹 블랙홀'로 대중음악계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같은 공간에서 대중과 밀착 소통해야하는 대중음악, 공연 시장은 올해도 취약했다. 공연 매출은 지난 2년간 90% 감소했고 음향·조명·악기를 비롯한 공연업계·중소 레이블과 기획사는 고사 직전에 몰려 있다.
 
'뉴노멀 시계'는 점점 더 빨라졌다. 대면 제한에 따라 확장현실(XR), 메타버스 등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공연이 진화를 거듭했다. 영국 글래스톤베리, 일본 후지록페스티벌은 '첨단의 페스티벌'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과 유럽을 연결한 한 공연장에선 원격으로 조종 가능한 피아노도 무대에 올랐다. 최근에는 NFT 물결을 중심으로 음악 콘텐츠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팬데믹으로 공연 시장이 막힌 상황, 음악 산업계의 대전환기인 셈이다.
 
코로나가 거의 모든 이슈를 잠식했지만, 훗날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겨질 굵직한 순간들도 여럿 있었다.
 
방탄소년단(BTS)이 열어 젖힌 문을 투과한 K팝은 이제 세계 주류로 부상 중이다. 앨범이 나오면 미국 음악 방송을 안방처럼 넘나들고 빌보드 차트 상위권까지 오르는 광경은 더 이상 일회성이 아니다. K팝 음반 판매량은 전년 대비 42.9% 늘고 수출도 사상 첫 2억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투어에 이어 KEXP 라이브 출연까지 성공한 악단광칠, 워멕스 2021 쇼케이스에 2년 연속 참가한 동양고주파 소식은 올해의 '작은 태풍'이었다. 세계 음악 매체들은 파란노을, 포그 같은 한국의 슈게이징 팀들도 원석 캐듯 발굴해냈다. 조동진부터 김광석에 이르기까지, 동아기획과 학전소극장을 무대로 올리며 한국 대중음악사 기록(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돌아본 원년이기도 했다.
 
빛과 그늘의 차가 어느 해보다 컸던 2021년. 올 한 해 대중음악계 소식을 10개의 키워드로 정리, 분석해본다.
 
올해 온라인으로 치뤄진 영국 글래스톤베리. ‘피라미드 스테이지’ 콜드플레이 무대. 사진/ⓒColdplay photography credit Anna Barclay
 
AMA 대상·그래미 후보, 기록 정점 찍은 BTS
 
최근 몇 년간 기록을 써온 방탄소년단은 올해 정점을 찍었다. 대표곡 '버터'는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서 총 10차례 정상을 밟았다.
 
세계적인 가수들과 협업으로 팝 시장 내 영향력도 점차 넓혔다. 에드 시런이 작곡한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밴드 콜드플레이와의 협업곡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 메건 더 스탤리언이 피처링한 '버터(Butter)' 리믹스까지 전부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려놓으며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래미, 빌보드와 함께 3대 미국 대중음악시상식으로 평가받는 '아메리칸뮤직어워드' 대상('올해의 아티스트') 수상은 화룡점정이다. 팝의 본고장이자 미국 주류 음악 시장에 'BTS 현상'을 입증한 셈이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대중음악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최초 기록이다.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도 2년 연속 후보로 오르면서 내년 수상에 관심이 모아진다.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2년 만에 연 오프라인 콘서트는 증명의 현장이었다. 네 차례 20만명을 동원, 9년 만에 세계 대중음악 공연 사상 최대 흥행을 냈다. 팬데믹 상황에 따라 내년 세계 투어로 이어진다면 방탄 신드롬 2막이 열릴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방탄소년단(BTS)이 21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AMA)에 참석해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K팝 수출 사상 첫 2억 달러 돌파·음반 판매량 6000만장
 
방탄소년단(BTS)이 열어 젖힌 문을 투과한 K팝은 이제 세계 주류로 부상 중이다.
 
미국 음악 방송을 안방처럼 넘나들고 빌보드 차트 상위권까지 오르는 현상은 K팝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K팝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음반 수출 역시 신기록을 세웠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 누적 음반 수출액은 2억423만5000달러로, 사상 첫 2억달러를 돌파했다.
 
12월 실적을 제외하고도 지난해 연간 음반 수출액 1억3620만1000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가온차트에 따르면 올해 1∼11월 국내 누적 음반 판매량(상위 400개 기준) 약 5500만장으로 연말까지 합산하면 약 6000만장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룹 NCT 드림과 NCT 127은 올 한 해만 300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세븐틴이 200만장을 넘어섰고 엔하이픈, 스트레이키즈, 엑소, 백현, 블랙핑크 리사와 로제, 아이유, 트와이스, 있지 등이 100만장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에는 신인 그룹까지 앨범이 나오면 세계 대중음악계가 주목하는 기현상도 발생한다. 에스파는 데뷔곡 '블랙맘바(Black Mamba)'부터 '넥스트 레벨(Next Level)', '새비지(Savage)'까지 3연속 히트에 성공했다. 첫 미니음반 '새비지(Savage)'로 50만장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20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그룹 에스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아날로그의 반격'과 '대중음악 아카이빙'
 
음악 스트리밍이 보편화된 반대 세계에는, 굳이 불편하게 판을 뒤집으며 음악을 즐기는 흐름이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레코드 매장에는 올해도 둥근 판들의 주도로 ‘아날로그 반격’이 일어났다.
 
미 음악 전문매체 빌보드와 시장조사전문업체 MRC가 올해 발표한 ‘2020년 미국 음악시장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LP는 총 2754만장이 판매됐다.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30년 만에 최대 성장폭이다.
 
멸종 위기에 처했던 LP(바이닐) ‘리붐 현상’은 국내 음반 매장의 풍경도 바꿔놓고 있다. 서울 내 각 레코드점들은 시티팝이나 비틀즈, 레드제플린 초판,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한정반을 수급하는 날이면 ‘조기 품절’을 준비해야 할 정도다. 주로 자기 표현을 즐기는 20대, 30대 MZ 세대들의 구매가 두드러진다. 현재까지 국내 LP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최근 1~2년 사이 성장 폭을 최대 5배(중고 LP 포함)까지 예측하는 분위기다.
 
아날로그의 향수와 함께 올해는 한국 대중음악사 기록(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돌아본 원년이기도 했다.
 
김민기의 학전을 돌아보고 동아기획 사단과 홍대 앞 인디뮤직, 90년대 댄스음악을 지나 오늘날 K팝에 이르는 30년의 역사를 기록한 '아카이브 K'는 첫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10부작 중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동아기획’과 ‘학전 소극장’ 편 출연진들, 조규찬, 김현철, 박학기, 동물원, 함춘호, 장필순, 여행스케치, 유리상자는 ‘우리, 지금 그 노래’라는 부제로 관객들과도 만났다.
 
한국 대중음악사 대백과의 집필 시대는 이제 막을 열었다.
 
10월22~23일 서울 이태원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아카이브 K-ON’ 콘서트. 사진/일일공일팔
 
악단광칠·동양고주파, 한국 음악 세계로 세계로
 
올해도 세계 진출은 K팝 아이돌 그룹 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이미 유명한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는 미국 국영 라디오 NPR의 간판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홈) 콘서트(tiny desk (home) concert)'에 출연했다. 2017년 밴드 씽씽이 처음 출연했고 작년 그룹 고래야, 방탄소년단(BTS)이 무대를 꾸민 프로그램이다.
 
악단광칠은 올해 3주간 미국 투어에 이어 공영 라디오 방송 KEXP에 출연했다. 시가레츠 애프터 섹스, 휘트니 같은 미국 밴드들이 거쳐간 시애틀의 유서 깊은 음악 방송이다.
 
동양고주파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워멕스 2021 쇼케이스'에 2년 연속 참가하는 쾌거를 이뤘다. 거문고 명인 허윤정이 이끄는 4인조 국악 그룹 블랙스트링,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 가야금과 거문고를 내세운 듀오 달음 등이 올해 세계 각지 무대에 올랐다.
 
10년 만에 정규 3집 '시편(psalms)'을 낸 정재일은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게임' OST로 올해 내내 주목받았다.
 
세계 음악 매체들은 한국의 슈게이징 팀들도 원석 캐듯 발굴해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는 파란노을은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매체 '피치포크'에서 10점 만점에 무려 평점을 8점을 따내며 음악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포그의 데뷔작 역시 미국과 호주, 브라질 슈게이즈 전문 라디오 방송에서 입소문을 끌었다.
 
올해 KEXP에 출연한 악단광칠. 사진/유튜브 캡처
 
영향력 커지는 장르 뮤지션들, 새로운 'K팝 화풍'
 
올해 록과 재즈, 힙합, 소울 등 소위 '장르 음악'으로 분류되는 음악가들의 K팝 내 영향력은 전보다 더욱 깊고 활발하게 확대됐다.
 
검정치마는 올해 청하와 웬디 등 K팝 가수들의 곡을 쓰고 백보컬까지 참여했다. 과거 여러차례 인피니트 김성규의 솔로 앨범 프로듀서로 나섰던 넬 김종완은 이승기의 곡을 프로듀싱했다.
 
주로 직접 곡과 가사를 쓰는 이들은 곡과 앨범 콘셉트까지 결정하면서 아이돌 음반에 실험적인 색깔을 불어 넣는다.
 
올해는 장르 음악 분야 프로듀서들의 영향력도 두드러졌다.
 
뮤지션 오션프롬더블루는 '언택트 송캠프'를 주선하고 다양한 프로듀서들 주도의 실험작을 내놨다. 디스코하우스 장르부터 G-펑크, 힙합에 이르는 EP 앨범 ‘forward’는 올해를 대표할 만한 R&B 음반 가운데 하나다.
 
BTS, 레드벨벳, 청하를 비롯한 다양한 케이팝 음악을 프로듀싱해온 프로듀서 수민은 힙합 플듀서 슬롬과 뭉쳐 첫 합작 정규 ‘미니시리즈’를 냈다.
 
K팝이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면서, 이제 국내 대중음악계의 지형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K팝 화풍이 그려지고 있다.
 
검정치마가 작업한 청하 싱글 'X'. 사진/MHn엔터테인먼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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