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 3사가 장악하고 있는 본인확인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다만 네이버, 카카오가 과거 고배를 마셨던 항목의 개선은 없어 빅테크 업체들이 단시일 내에 시장에 진입하기는 다소 어려울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열린 제1차 전체회의에서 '본인확인기관 지정 등에 관한 기준'(고시) 개정안을 의결했다.
본인확인 서비스는 온라인 서비스 또는 금융상품 가입 시 가입자 본인이 맞음을 인증하는 절차다. 현재 통신 3사와 토스, 아이핀, 신용카드사 등이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돼 있지만 통신3사의 점유율이 98% 이상으로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통신 3사의 ‘패스’ 앱에 개인정보와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거나, 가입자 휴대폰으로 날아온 인증번호를 입력해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독점적 지위로 통신사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9월까지 약 5년간 통신사는 본인확인서비스로 3000억원대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통신 3사가 사업자에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건당 수수료도 30원에서 40원으로 인상됐다.
카카오, 네이버, NHN 등 민간 인증서 사업을 하는 업체들도 본인확인을 위해서는 통신사에 수백억원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에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용자 편의성 개선 등을 목적으로 직접 사업을 하고자 지난해 3월 본인확인기관 지정 신청을 했으나 심사 기준에 못 미쳐 탈락했다. 당시 탈락 사유로는 비실명 계정 소유자의 본인 확인 명의자가 동일한지를 검증할 수 없다는 점이 지목됐다.
네이버, 카카오와 함께 탈락을 했던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같은 해 8월 12개 개선사항 완료를 조건으로 신규 지정이 됐으나, 네이버·카카오는 시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방통위가 이날 본인확인기관 지정 심사기준과 평가방식을 개선하기로 한 것도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어렵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핀테크, IT서비스 등에서 본인확인 서비스 이용량이 지속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본인확인수단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우선 심사항목(평가기준)을 현행화했다. 기존 92개 심사항목을 87개 항목으로 재구성하고 최신 기술·보안 이슈 등을 반영했다.
또한 기존에는 본 고시에 명시된 92개 심사항목에 대해 모두 ‘적합’ 판정을 받은 사업자에 대해서만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해 왔지만 심사항목에 대한 경중 등을 고려해 점수평가제를 일부 도입하는 등 평가방식을 수정했다.
개정된 고시에 따르면 본인확인기관의 핵심적 업무를 평가하는 21개 중요 심사항목과 2개 계량평가 항목에서는 반드시 ‘적합’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나머지 64개 심사항목에 대해서는 점수 평가를 적용해 총점 1000점 만점에 800점 이상 획득한 사업자를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한다.
다만 방통위는 중요 심사항목과 계량평가 항목에서 ‘적합’ 평가를 받았으나 평가점수가 800점에 미달하는 신청사업자가 있는 경우 조건을 붙여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본인확인기관 심사항목 변경내용 및 배점. 자료/방송통신위원회
아울러 방통위는 신청 사업자들의 경영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편의를 개선할 수 있는 조치들도 추가했다. 본인확인기관 지정심사 일정을 매년 3월31일까지 공고하도록 하고 사업계획 변경 절차도 마련했다.
한상혁 위원장은 “핀테크 등 개인화된 온라인 서비스가 다양하게 출시되면서 본인확인서비스의 안정성도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이번 고시 개정으로 향후 안정적인 본인확인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정심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방통위의 고시 개정에도 네이버, 카카오, NHN 등 빅테크 사업자들의 해당 시장 진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3월 네이버와 카카오가 충족하지 못했던 항목은 여전히 배점제가 아닌 '적합'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두 민간 인증서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서비스 완결성 측면이나 그 밖의 사업적 시너지를 위해서는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받는 것이 유리하지만, 문제가 됐던 이슈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긍정적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세 업체 모두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신청 및 사업 계획은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심사 기준을 보면 대체로 통신사 중심으로 돼 있고 인터넷 기업들이 하기엔 애매한 조항들이 있다"며 "이 부분만 보완되면 언제든 신청할 준비는 돼 있다"고 말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