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확전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가세했다. 발단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적폐청산 수사'에서 비롯됐다. 당장 정치보복으로 읽혀졌다.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윤 후보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대선 구도는 '이재명 대 윤석열'에서 '이재명+문재인 대 윤석열'로 달라졌다. 위기감을 느낀 친문 지지층이 그간 관망하던 태도를 접고 이재명 민주당 후보에게 결집할 경우 민주당이 그토록 바라던 진영 결집은 완성된다. 여기에다 검찰공화국에 두려움을 느낀 중도층마저 가세할 경우 대선 판은 급격히 요동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참모회의에서 "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대선 관련해 엄정한 정치중립과 공정관리만 당부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그만큼 격노가 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께서도 인터뷰 내용을 잘 몰라서 특별한 말씀을 안 하셨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본인으로서는 상당히 심각한 발언이라고 판단하셨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건 윤 후보의 9일자 언론 인터뷰였다. 윤 후보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권시 최측근 검찰 간부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해 검찰공화국을 만들 것이란 민주당 일각의 주장'에 대해 "그건 여권의 프레임"이라며 "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질렀나. 거기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야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적극 동의했다. 정치보복 우려에 대해서는 "누가 누구를 보복하나. 그러면 자기네 정부 때 정권 초기에 한 것은 헌법 원칙에 따른 것이고, 다음 정부가 자기네들의 비리와 불법에 대해선 한 건 보복인가”라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세계 7대 통신사와 합동으로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도 "아무리 선거 시기라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 없다"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탄핵 후폭풍과 퇴임 후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서도 우리 정치문화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인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언급한 데는 작금의 정치 상황에 대한 비통함이 담겼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말씀대로 대통령 질문에 답변하고 사과하면 깨끗하게 끝날 일"이라며 재차 윤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대통령을 흔들고 선거판에 불러내서 소재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이라며 "이런 것이 일종의 정치 적폐이고 구태"라고 규정했다. 특히 "선거 전략 차원에서 발언한 것이라면 굉장히 저열한 전략"이라며 "만약에 소신이라고 그러면 굉장히 위험하다. 최소한 민주주의자라면 이런 발언은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후보는 문 대통령의 격노 소식을 전해듣고 일단 한 발 크게 물러선 모습이다. 그는 이날 오후 "우리 문재인 대통령도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사정을 늘 강조해왔다"며 "그런 면에서 문 대통령과 저는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 "저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며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대통령으로 당선될 시 어떤 사정과 수사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지난 여름부터 말했다"고 청와대의 우려를 떨치는 데 주력했다.
윤 후보가 이처럼 후퇴를 결정한 것은 해당 발언이 불러올 파장 때문이다. 위기감을 느낀 진보진영이 대결집을 이룰 수 있고, 특히 민주당이 주장하는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중도층 표심을 뒤흔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체적으로는 윤 후보가 할 말을 했다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권에 공격의 빌미를 줬다는 지적도 있다"며 "문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선거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면에서 캠프 내에서도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윤 후보 팬카페에서도 윤 후보 발언이 과하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했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윤 후보 발언을 "정치보복 선언"으로 받아들이며 기다렸다는 듯 맹공에 들어갔다. 이재명 후보도 이날 "많은 대선 과정을 지켜봤지만, 후보가 정치보복을 사실상 공언하는 건 본 일이 없다"며 "보복이 아니라 통합의 길로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전날에도 "듣기에 따라서는 정치보복을 하겠다고 들릴 수 있는 말이라서 매우 당황스럽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 발언에 위기감을 느낀 친문 지지층이 급격하게 이재명 후보 쪽으로 결집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면서 전선이 '이재명 대 윤석열'에서 '이재명+문재인 대 윤석열'로 확대됐고, 이에 따라 친문 지지층이 수수방관하던 자세를 버리고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들은 그간 반이재명 정서를 이유로 이 후보 지지를 유보해왔다. 민주당에 따르면 그 표심만 대략 5% 남짓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와 이 후보의 지지율 간 격차와 같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에 오르자마자 문 대통령 지지층 가운데 이 후보 지지를 주저하는 이들의 결집을 위해 애썼다. 그만큼 이 빈 자리가 컸다. 그는 "문 대통령이 성공적인 임기를 마치고 퇴임 이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후보는 이재명 후보 뿐"이라고 강조해왔다. 마침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으로 우 본부장의 발언도 설득력을 얻게 됐다. 여기에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이 이 후보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강성 친문 및 호남 표심의 결집을 통해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 정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0일 서울 서초구 더 케이 호텔에서 열린 재경전라북도민회 신년인사회를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이 그동안 이 후보의 약점이었던 친문과 비문의 결집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봤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까지 비문 중심으로 지지세가 형성됐던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이제는 친문, 비문 구분없이 결집할 계기가 마련됐다"며 "이낙연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나서서 다시 정비를 하는 데다, 이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가 사과하면서 전세는 또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 후보의 발언이 중도층에도 부정적 인식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친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 대다수, 특히 중도적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안 좋은 발언"이라며 "중도층과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민주화를 원하는 쪽의 표심이 어디 가느냐에 따라 (대선의 향방이)결정이 되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부정적 인식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가세, 이 후보가 현 정부와의 차별화를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에서 정권교체론을 등에 업은 윤 후보의 선전을 예상하기도 했다. 정권교체 심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