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시민사회단체들이 대법원이 성폭력 사건 선고를 장기간 지연 시켜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 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와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무런 이유 설명도 없이 대법원판결이 끝도 없이 지연되는 상황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법원을 비판했다.
공대위는 진정 사건 2건 외에도 더 많은 성폭력 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일 것이라며, 지난 2017년 법원에 2년 이상 계류된 형사사건만 302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를 향해 “즉시 판결을 선고하고, 장기미제사건 진행 상황을 공개하는 등 재판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대법원에 권고해달라”고 요구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 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은 2010년 두 명의 해군이 함정에 갓 배치된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8년을 선고받았으나 고등군사법원 2심은 2018년 이를 뒤집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3년이 넘도록 대법원에 계류돼있다.
'가장 보통의 준강간사건'은 2017년 클럽에서 처음 만난 가해자가 술에 취한 피해자를 모텔로 데려가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1심과 2심에서 가해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해당 사건의 명칭은 여성이 술에 취하는 등 ‘블랙아웃’ 상태에서 준강간을 당하더라도 사법부와 경찰이 신체 항거불능을 인정하지 않아 준강간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이 사건은 2020년 5월 대법원에 접수된 후 1년9개월이 지났지만 선고되지 않고 있다.
박인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가해자들이 일상생활을 누리는 동안 피해자들은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며 “특히 해군상관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여전히 매년 수천만원 월급을 군대에서 가져가고 있지만, 유죄 판결이 나도 회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판결이 지연될수록 국가적 손해가 커지는데, 이러한 문제를 법원이 인지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성폭력사건 장기계류는 인권침해다. 멈춰진 대법원시계, 인권위가 돌려라'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