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정부의 대통령 집무실로 서울 용산구의 국방부 청사가 유력해졌다. 국방부 청사의 경우 민간과 격리된 군사시설이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천명한 '국민 속으로' 취지는 무색해진다. 오히려 대통령이 군사대결의 상징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국방부 이전에 따른 갖가지 문제도 뒤따른다. 그러자 당선인 주변에서도 시간을 두고 결정하자는 신중론이 제기됐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1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국방부 청사가 대통령 집무실로 거론되는 데 대해 "결론이 최종적으로 나오지 않아 전제로 말하기 어렵다"며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의 청와대 구조는 국민보다 대통령에 더 집중하고 있는 구조"라며 "권위주의 잔재 청산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광화문, 그리고 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고 한 것"이라고 집무실 이전에 따른 의미를 강조했다.
이미 인수위에서는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을 전제로 준비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인수위는 국방부에 이달 말까지 청사 1~5층을 비워달라고 통보를 한 상태다. 이후 4월 중 리모델링을 거쳐 오는 5월10일 취임 첫 날부터 윤 당선인이 국방부 청사로 출근하겠다는 구상이다. 인수위가 당초 약속했던 '광화문 시대' 대신 '용산' 카드를 꺼내든 주된 이유는 경호·보안 때문이다. 시민들이 시위와 집회 장소로도 사용하는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 또는 외교부청사와 비교해 국방부는 군 시설로, 지하벙커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군사시설인 국방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긴다는 것이 '소통'을 명분으로 청와대를 나오겠다는 윤 당선인의 구상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방부 외곽은 경찰이 경비하고, 담과 철조망이 둘러싼 내부는 총기로 무장한 군사경찰대대가 지키고 있다. 국방부 본관에 집무실이 들어서면 정문에서 집무실까지 도보로 10분 정도 걸려 국민과의 일상적 소통 면에서 청와대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이전 때까지 대통령 집무실과 상당기간 동거가 불가피하다는 측면에서 대통령 집무실이 군에 둘러싸이는 모양새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국방부 청사가 청와대보다 더 구중궁궐이 될 것으로 지적됐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국방부는 군 부대"라며 "많은 국방부 직할부대가 있고, 무장이 돼 있다. 군사기밀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청와대보다 출입 자체가 더 까다롭고, 민간인은 절대 접근할 수 없는 특수시설이다. 구중궁궐로 따지자면 청와대보다 여기가 더 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 인근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박주선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과 산책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뉴시스 사진)
인수위에서는 국방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현재 용산 미군기지 부지를 공원으로 만들어 집무실 일대와 연결해 미국 백악관처럼 집무실 바로 앞까지 일반 국민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지만, 비용과 시기를 고려할 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 이전에만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데다, 용산공원은 2027년 완공 목표여서 임기 내 활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 군 지휘부 시설을 이전하는 동안 자칫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다.
김 전 의원은 "국방부는 여느 부서와 달라서 한미연합 정보 공조라든지, 동맹국인 미국의 위성 정보를 받는 곳"이라며 "위기관리를 하는 곳인데 이런 곳을 한 달 만에 비우라고 하면 국가 안보의 공백과 결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방부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건물이 현재 없기 때문에 안보상의 문제도 심각하고, 나중에 이것을 정상화하는데 수천억원의 예산이 낭비된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에 대한 경호·보안으로 시민들이 겪게 될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방부 청사 인근 지역이 출퇴근길 상습 정체 구간으로 꼽히는 만큼, 대통령 관저를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마련하게 되면 이태원과 삼각지 일대의 교통통제, 재밍(전파차단)에 따른 시민 불편이 커질 수 있다. 국방부 청사 내 관저를 짓겠다는 구상도 있지만 이렇게 될 경우, 기존에 청와대 내부에서 대통령이 출퇴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대통령을 향한 시민단체들의 집회·시위가 빈번한 상황에서 국방부 청사 주변이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는 점도 근처에 사는 시민들에게는 불편거리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 계획을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왔다. 윤 당선인의 특별고문인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근무 경험을 들며 급하게 대통령 집무 공간을 옮기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임 특별고문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국정에 시급하고 중요한 게 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며 "시기를 정해놓고 이렇게 추진하는 것은 매우 무리가 따를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상징성을 고려해 청와대 자체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김진애 전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는 서울의 상징이고, '블루하우스'라는 명칭은 마치 미국의 '화이트하우스', 영국의 '다우닝가'처럼 대한민국 리더십의 상징"이라며 "이런 상징 자본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데, 이것을 당선자 마음 하나로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전 의원은 "청와대는 전체적으로 리모델링을 다시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서동인)여민관 건물을 제대로 지어서 그쪽에다 백악관 웨스트윙처럼 쓸 수 있게 해놓아야 한다. 그 다음에 관저도 굉장히 떨어져 있는데 (대통령 업무공간) 바로 옆에 붙여서 훨씬 더 콤팩트하게 만들어도 된다"며 "그런 다음에 시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공간은 더 만들어내면 된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종로구에서 바라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과 청와대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