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둔촌주공 조합과 시공단 간 갈등 조정에 나선 서울시가 사실상 형식적인 중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합 전 집행부가 시공단과 공사비 증액 계약을 체결한 것을 두고 법적인 절차 문제가 불거지면서 양측은 협상보다는 소송전이 불가피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27일 서울시와 조합 등에 따르면 그동안 시는 조합과 시공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갈등 중재를 10여 차례 주도했다. 그러나 조합이 공사비 증액 계약 무효를 주장하면서 시공단은 15일 0시부터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조합과 민간 건설사의 갈등이지만 서울시 입장에서는 이를 외면할 수도, 그렇다고 획기적인 중재안을 내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양측의 갈등이 길어질수록 서울지역의 주택공급과 입주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갈등이 되고 있는 공사비 증액 관련 인허가권은 관할구청인 강동구가 갖고 있고, 적정 공사비를 검증해 제시할 권한도 시에 없다.
조합 측은 공사비 증액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공사비 재검증을 위한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공단 측에서는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적정 공사비 산출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상태다.
양측 갈등은 지난 2020년 6월 조합 전 집행부가 시공단과 5600억원 가량의 공사비 증액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둔촌주공 전 조합장이 시공단과 설계 변경 계약을 체결하면서 공사비는 2조6708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늘었다.
이후 분양가 산정 문제 등으로 조합장과 집행부가 해임되면서 새로 들어선 집행부는 기존 조합이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합은 관련 법에 따라 공사비 증액 계약을 체결하려면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 결과를 공개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빠졌다는 것이다.
시공단은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공사비 검증과 공개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닌데다, 계약 변경은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인 총회 의결을 거친 후 관할 구청인 강동구의 인허가를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조합 측은 "재작년 체결된 공사비 변경 계약의 유·무효 여부를 두고 조합과 시공단 간 이견을 법원이 가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소송을 하게 되는 상황"이라며 "시는 조합과 시공단의 중재 보다는 구청 인허가의 적정성을 더 따져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둔촌주공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4700여가구의 일반 분양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사비 증액의 적정성을 따지기 위해 조합이 공사비 재검증을 위한 업체 선정 절차에 착수했고 이 과정만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갈등 해결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썬 최악으로 가지 말자고 설득하고 있다"며 "양측이 협의를 거부한다면 서울시도 손을 쓸 방법이 없지만 공사 중단으로 상황이 변하면서 양측도 협의 여지를 보이고 있고, 계속해서 협상 테이블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사업으로 꼽힌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일대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의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공사다. 현재 공정률은 약 52%다.
올해 8월에 입주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조합과 시공단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정확한 입주 일정은 불투명한 상태다. 조합이 공사비 재검증을 하고 시공단과 소송전으로 갈 경우에는 최소 6개월 이상 공사와 입주가 지연될 예정이다.
26일 오전 공사가 중단된 지 10일이 넘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