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인터넷 요금을 지불할 의무가 없다'며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과거 이메일을 주고받던 인터넷 공간이 하루 수천만개의 동영상이 오가는 거대 트래픽이 발생하는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과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 간 네트워크 투자 책임 공방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확대된 넷플릭스와 ISP 사업자들 간 망이용료 이슈를 짚어보며, ISP와 콘텐츠제공사업자(CP)간 망이용료 역할분담 방향성 등에 대해 조명해본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국내에서 시작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망이용료 분쟁이 글로벌 논제로 확대되고 있다. SK브로드밴드가 2019년 11월 넷플릭스를 상대로 '망 사용료를 내라'며 방송통신위원회에 망이용대가 협상 재정 신청을 했고, 넷플릭스가 이를 거부하고 이듬해 4월 법원에 채무부존재(지급의무 없음)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된 법정 공방이 2년 넘게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유럽연합(EU)도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의 망 무임승차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CP가 ISP와 망 투자를 분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지난 18일 열린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망이용료 항소심 2차변론기일에서 양 측은 무정산 연결과 유상행위라는 논리로 팽팽히 맞섰다.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전송망(CDN)인 오픈커넥트(OCA)를 통해 무정산 방식으로 연결되므로 망 이용대가를 낼 법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SK브로드밴드는 기업 간 거래가 기본적으로 유상 행위를 전제로 하는 만큼 CP가 ISP에 망 사용 대가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넷플릭스는 송신 ISP를 거치지 않은 채 SK브로드밴드 망과 무정산 피어링(peering, 대등한 관계의 접속) 방식으로 연결돼 있으며, 양사 연결지점인 도쿄와 홍콩에서부터 최종적 전송은 SK브로드밴드가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다음달 15일 변론을 속행하기로 합의했다. 강신섭 세종 대표 변호사는 "해당 재판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재판부가 충실히 심리를 진행하고 판결을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예상보다 판결이 늦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마련된 '지옥' 체험존의 넷플릭스 로고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유럽에서도 최근 넷플릭스, 구글 등 글로벌 CP들에 망이용료를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내부시장 담당 위원은 최근 프랑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망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 중으로 올해 연말까지 해당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독일 도이치텔레콤, 프랑스 오랑주, 영국 보다폰, 스페인 텔레포니카 등 유럽 대표 이동통신사들은 지난 2월 EU 의회에 서한을 보내 빅테크의 망 투자 참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EU가 입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220여개국 750개 이동통신사가 모여 만든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도 GSMA 2022 인터넷 밸류체인 보고서를 발간하며 ISP와 인터넷서비스 사업자 간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도록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서비스 업체들을 필두로 인터넷 밸류체인 전체 수익은 2020년 6조7000억달러로 2015년 3조3000억달러에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연평균 15% 수준이다. 하지만 인터넷서비스 기업들의 수익을 키우는 사이 글로벌 통신망 사업체들의 설비투자 부담이 급증했고, 망사업자들의 인프라 투자 수익률은 6~11%로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들 대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글로벌 움직임에 대해 넷플릭스 측은 "CP가 망이용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각국에서 발생하는 망이용료에 대해 ISP뿐만 아니라 CP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결국은 CP도 망이용료를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 추세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