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저까지 기회가 올까요?"…'0-나'의 설움

유권자들, 생소한 기호에 헷갈려…기호선거제의 폐해에 교호순번제 대안도

입력 : 2022-05-27 오후 4:01:49
[인천=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사전투표 첫날 새벽부터 명함을 돌리는데 (투표를 마치고 나온)사람들이 당만 보고 찍었대. 저 너무 힘들어요."
 
26일 오전 계양구 기초의원에 출마한 김숙의 국민의힘 후보가 명함을 돌리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6·1 지방선거 사전투표 첫 날인 27일, 인천 계양구 라선거구에 기초의원으로 출마한 김숙의 국민의힘 후보는 긴 한숨과 함께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가 부여받은 기호는 2-나. 생소한 기호였다.
 
김 후보는 "사람들이 '2-나'가 뭐냐며 이해를 못한다. 저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체로 당만 보고 찍거나 아니면 헷갈리니까 '가·나' 둘 다 찍었다는 사람도 있다"며 아예 무효표가 된 경우도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초의원 선거는 이번 지방선거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면서 정당에서 여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호 1번 정당의 추천 후보자가 2명이면 '1-가' '1-나'로 표시한다. 이럴 경우에도 유권자는 반드시 한 명의 후보자에게만 투표해야 한다. 두 명 이상의 후보자에게 투표하면 무효가 된다.
 
정당 추천 여부와 의석 수에 따라 기호를 부여하는 '정당기호순번제'는 매번 선거 때마다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인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지역구 선거에서조차 기호와 정당명 뒤에 후보자명이 표시되어 있어 유권자가 투표 시 정당·기호 순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6일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와 함께 김 후보는 합동유세를 진행하며 열심히 명함을 돌렸다. 기자가 옆에서 지켜보니 김 후보는 자신의 '이름'을 강조하면서도 '나'번을 뽑아달라고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생소함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26일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와 함께 합동유세를 하는 김숙의 후보(하단 맨 오른쪽)(사진=뉴스토마토)
 
김 후보는 자신의 별명이 '민원 해결사'라며 "당 생활 17년에 주변에서 일 열심히 한다고 인정해주는데 왜 '나'번을 부여받았는지 모르겠다. 일단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에 저까지 기회가 오겠느냐"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6·1 전국동시지방선거 대부분의 유권자는 모두 7장의 투표용지를 받는다. △광역단체장(광역시장·도지사) △교육감 △기초단체장(시·군·구) △광역의원 △기초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 투표용지다. 세종과 제주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등이 빠지고 보궐선거를 치르는 지역에서는 투표용지가 1장 더 늘어난다.
 
다량의 투표용지를 받은 유권자는 헷갈리기 십상이다. 이날 오전 일찍이 사전투표를 마쳤다는 한 시민은 "이번 선거에 투표해야 할 것이 너무 많으니 헷갈린다"며 "모르는 건 지지하는 당의 첫 칸(후보)에 찍고 나왔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6일 ‘투표용지 양식의 불평등성 논란과 쟁점:정당 특권과 기호순번제 문제' 보고서를 발간하며 기호순번제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행 투표용지 양식은 △정당표시에 의한 신호효과 △아라비아 숫자 배정에 따른 기호효과 △게재순위에 따른 순서효과 등 3중의 효과가 있다. 이에 유권자의 선호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투표용지 구성과 후보자 게재 순위가 개편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안책 중 하나로 '교호순번제'가 꼽힌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는 교육감 후보자의 이름을 가로로 나열하는 '교호순번제'가 도입됐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중립을 위해 정당에서 후보를 추천하지 않아 기호가 없다. 또 세로로 배열시 특정 정당을 의미할 수 있어 가로로 나열하는 등 특정 위치에 배치되는 부작용을 막았다. 아울러 별도 번호 없이 선거구별로 차례로 이름 순서를 바꾸는 순환배열로 기회 균등을 지향한다.
 
인천=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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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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