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을 들고 대형마트에 가도 살게 없어요.", "주유하기가 겁나서 다시 평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치킨 시킬 때도 마릿수를 고민하게 되네요."
최근 밥상 물가 폭등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가구들이 부쩍 늘었다. 물가 상승에 따른 어려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지만 최근 물가 상승폭 자체가 워낙 가파른 것이 심상치 않다.
실제로 물가 관련 각종 지표에서도 이 같은 현장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달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8%까지 치솟았다. 이는 2008년 10월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물가상승률은 불과 두 달 전인 3월 4.1%로 10년 3개월 만에 4%대 벽을 넘어선 바 있다. 하지만 1개월 만에 5%대에 근접했고 이달에는 5%대를 사실상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이 같은 물가 고공 행진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및 주요 원자재의 가격 급등, 이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 둔화, 코로나19 사태의 불확실성 지속 등 악재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어서다. 하나같이 단기간 내 해결이 불가능한 난제들이다.
이에 한국은행 역시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기존 3.1%에서 4.5%로 수정했다. 한은이 해당 연도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4%로 제시한 것은 10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또 한은은 이달 2개월 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물가 안정을 이유로 들었다. 취약 계층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 뻔하지만 현재로서는 금리 인상 말고는 물가를 잡을 만한 뾰족한 비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보통 한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때 금융불균형 해소를 전면에 내세웠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은이 그만큼 최근 물가 동향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 불안의 전조증상은 곳곳에서 포착됐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
당시엔 물가상승률이 2%에서 3%로 진입 중이었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무관한 시기였다. 그때 미리 확실한 대응 방안이 마련됐다면 최근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 없는 가정도 해본다. 그때도 물가 상승기이긴 했지만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분명 나았다.
현시점이 물가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골든 타임'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만큼 새 정부는 모든 현안을 다 제치고 이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정부는 이달 30일 급격한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 경제 부담을 낮추기 위한 민생안정 대책을 마련했다. 식료품, 식자재 등 원가부담 완화를 추진하고 관세, 부가세 면제 등 조치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급한 불부터 최대한 끄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고물가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면, 재정 건전성 확보, 원자재 공급망 내재화 등 물가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거시적 측면의 방안 마련도 반드시 요구된다. 결국 우리 경제 체질 전반을 개선하고 면역 자체를 강화하는 것만이 기약 없는 고물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김충범 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