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이 일사불란하게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삼성과 LG 등 9개 그룹을 합치면 1000조원이 넘는다. 기간도 새 대통령 임기 5년에 맞춰 이례적이다.
투자 내용은 다양하다. 삼성은 반도체를 비롯한 미래 먹거리에 450조원, SK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에 247조원, LG는 배터리·디스플레이 등에 106조원을 쏟아붓는다.
역대급 소식인데 기시감이 든다. 30대 그룹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때 1년간 96조3000억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에는 한해 149조원 투자 계획을 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 때는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계획을 밝혔다.
약속 이행 현황을 자신있게 내놓은 사례는 삼성이 유명하다. 삼성은 2018년 8월 180조원 투자를 약속하고 2020년 8월 투자와 일자리 창출 목표에 거의 도달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반면 대부분은 공시와 사업보고서에 나온 투자 현황으로 기업들의 실천을 가늠해야 한다. 계획은 온국민이 접하는데 결과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다.
투자 발표의 구체성도 기업별로 상이하다. 상대적으로 자세한 곳이 있는가 하면 '큰 그림'을 봐 달라고 하는 회사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사업 부문별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묻자 "투자 금액이 따로 구분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라며 "내용을 봐달라"고 답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도 "세부적인 것을 따로 내지는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서는 "다른 기업들이 잇따라 발표해서 우리도 급히 투자 계획을 모아 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기업들이 투자 기간을 윤석열 대통령 임기인 5년으로 잡은 이유는 강력한 규제 개혁 요구로 풀이된다. 임기말에는 경제단체도 국민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윤석열 정부를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 역시 5년 뒤 '윤석열 정부 투자 약속 이행 보고서'를 내야 한다. 발표 당시와 실제 투자는 어떻게 달랐는지, 정부 정책이 어떤 도움이 됐는지 밝혀야 국민들이 정부의 산업 정책과 기업의 약속을 지지할 수 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