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당분간 물가 중심의 통화 정책을 운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해외발 공급 충격 장기화로 앞으로도 5%를 웃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되는 만큼 고물가 고착화 타개에 주안점을 둔 통화 정책 운용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한은이 당장 내달 다가온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단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높이는 '빅 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 기자간담회에서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 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통화 정책은 물가, 경기, 금융안정, 외환시장 상황 등 향후 발표되는 경제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데이터 디펜던트(경제 지표 의존)하게, 유연하게 수행돼야 한다는 것이 이 총재의 견해다.
이는 내달 소비자물가 변동률이 6%를 넘어설 경우 빅 스텝 시행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소비자물가 지수는 지난달 5.4% 상승하며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낸 바 있다.
6~7월 물가 상승률에 대해 이 총재는 "6~7월에는 5월 물가 상승률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6%를 넘어가느냐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5월 생각했던 물가 상승률보다는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원자재 공급 병목, 국제유가 급등 등의 요인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월간 소비자물가는 5%를 상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한은 판단이다.
이창용 총재는 "앞으로의 물가 흐름은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양상, 국제 원자재 가격 추이,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상승 정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지만 전반적으로 상방 리스크가 우세해 보인다"고 관측했다.
그는 "이처럼 국내외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향후 물가 흐름과 관련해 해외발 공급 충격의 영향이 장기화될 수 있는 점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주요 글로벌 전망 기관들에 따르면 고유가 상황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높아진 국제 식량 가격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국제 식량 가격 상승에 따른 애그플레이션 현상은 하방 경직적이고 지속성이 높은 특성으로 인해 그 영향이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글로벌 공급망도 회복 시기가 늦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빅 스텝 단행 가능성에 대해 이 총재는 "다음 주 금통위까지 3주의 시간이 남았는데 물가가 올라갔을 때 경기와 환율에 미치는 영향, 가계 이자 부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이 있지만 (물가가) 이 숫자가 나오면 이렇게 하겠다는 것보다는 물가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추세가 꺾일 때까지는 물가 중심으로 통화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며 "다만 양과 속도에 대해서는 데이터를 보고 금통위원들과 적절히 판단해서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연말 기준금리 전망이 2.75~3%로 상향 조정된 것에 대해서는 "국내 상황은 아직 큰 변화가 없는데 해외 요인 변화로 국제 금융 시장이 불완전한 상황에서 시장 금리 전망치가 오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서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있다, 없다 단순하게 말씀 드리기보다는 지난 5월 금통위 상황보다 물가 상방 위험이 높아졌고, 성장률도 미국과 중국 경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우리도 나빠졌다"며 "경기는 하방 위험, 인플레는 상방 위험이 커졌지만 현 상태에서 보면 올해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2%보다는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 기자간담회에서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 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 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이창용 총재가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한국은행)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