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오는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한다. 최고위원이 아닌 당대표에 도전한다. 자신에게 비대위원장직 수락을 종용한 이재명 의원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예상되지만, 큰 부담은 없다는 입장이다. 강성 팬덤정치와의 결별과 86그룹 퇴진 등 그가 던진 숙제는 전당대회에서 또 다시 극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27일 박 전 위원장 측을 비롯해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전 위원장은 최근 전당대회 출마 결심을 굳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당대표에 도전한다"고 말했고, 지난주 박 전 의원장을 만났다는 또 다른 관계자도 "당대표 도전 의지가 확고하다"고 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연일 내놓고 있는 메시지도 전당대회를 겨냥한 사전 몸풀기 차원이다. 유력 당권주자인 이재명 의원 측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 측에서 전대 출마 의사를 전해왔다"고 했다. 정치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몇몇 핵심 인사들이 박 전 위원장을 돕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6·1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공동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 박 전 위원장은 지난 20일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발언에 대한 당 윤리심판원 결정을 앞두고 중징계를 요구하며 정치 일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지금 민주당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며 "하나는 혁신의 길, 또 다른 하나는 팬덤의 길"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민주당의 혁신은 '약속을 지키는 민주당'으로 시작해야 한다"며 최 의원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하는 한편 최 의원을 감싼 "방탄 팬덤"을 꾸짖었다.
최 의원에 대한 '당원 자격정지 6개월'이라는 윤리심판원의 중징계 이후에는 다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늦었지만 다행이고, 환영하지만 아쉽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는 재차 "거짓과 위선, 폭력과 증오로 당을 위기에 빠트리는 강성 팬덤"의 문제점을 짚은 뒤, 최 의원을 적극 엄호한 김남국 의원에게까지 책임을 물었다. 이어 이들이 속한 당내 의원모임 '처럼회'의 해체를 촉구했다. 처럼회는 검찰개혁 법안의 강행 처리를 주도한 당내 강경파 의원들의 모임으로, 이재명 의원 지지 성향을 보인다.
팬덤정치와의 전선은 '개딸'(이재명 의원 강성 지지층)에서 '문파'(문재인 전 대통령 강성 지지층)로까지 옮겨갔다. 지난 24일에는 "폭력적 팬덤의 원조는 '극렬 문파'"라며 "이들의 눈엣가시가 되어 온갖 고초를 겪은 대표적인 정치인이 이재명 의원"이라고 주장해 또 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그간 박 전 위원장을 두둔하며 응원하던 이원욱 의원은 "갑자기 강성 문파를 소환했다"며 "이재명 의원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6일에는 윤석열정부를 향해 "'반노동 본색'을 드러냈다"며 전선을 확장했다. 그동안 당내 성비위와 팬덤정치의 부정적 면에 집중하던 그는 이날 최저임금 동결과 주 52시간 근로제의 개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이나 언급했던 자유는 '기업의 자유'"였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을 향해서도 "윤석열정부에 맞서 청년과 서민과 중산층의 자유를 위해 싸워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저도 작은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27일에는 "임신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어떤 경우에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며 여성의 임신중지권 보장 판례를 뒤엎은 미국 연방대법원 결정을 규탄했다.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9일 대구 수성구 범물동 동아백화점 수성점 앞에서 유세 차량에 올라 지역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거센 찬반 논쟁을 불러온 그이지만 당내 시선이 적대적이지만은 않다. 전대 불출마를 선언한 친문계 핵심 전해철 의원은 지난 24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박 전 위원장 관련해 "순기능과 또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그분이 어떤 식으로든지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고 출마에 긍정적 의견을 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지난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위원장을 가리켜 "당의 자산"이라며 "민주당이 (박 전 위원장을)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친문계 의원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박 전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안다"며 "최근 면회를 온 주위 인사들에게 '당이 박지현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86그룹에서 97그룹으로의 세대교체를 주장한 이광재 전 의원 역시 박 전 위원장에게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시선이 더해질 경우 반이재명 전선의 주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건은 박 전 위원장의 당대표 도전이 지방선거 패배 이후 지도부의 재등판이라는 점에서 '송영길 시즌 2'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난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이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지방선거 참패 책임론에 휩싸였다는 점에서 박 전 위원장이 어떠한 명분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물론 두 사람이 명분 없는 출마(인천을 기반으로 한 송영길의 서울시장 출마와 분당갑 대신 당선 안정권을 노린 이재명의 인천 계양을 출마)를 강행했다는 점에서 박 전 의원장 행보와는 달리 봐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또 하나는 당내 세력의 한계다. 변변한 세력 하나 없는 상황에서 '개딸'과 '문파', 양대 강성 지지층을 적으로 돌렸다. 특히 현행 당대표 선출 방식이 지극히 당심(대의원 45%, 권리당원 40%, 당원 여론조사 10%) 위주라는 점에서 그의 조직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운 취약점으로 꼽힌다. 다만, 민주당이 23일~24일 의원 워크숍에서 당심과 민심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현행 10%에 불과한 민심(일반국민 여론조사)의 상향 조정은 뒤따를 전망이다. 이는 이재명 의원을 제외하고 인지도 면에서 크게 뒤처질 게 없는 박 전 위원장 입장에서는 크게 반길 만한 일이다. 앞서 박 전 위원장도 24일 "새로운 당대표 선거 규정이 매우 중요하다"며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좁히고 팬심이 아닌 민심을 많이 얻는 후보를 당 대표로 선출할 수 있도록 당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당 한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이 최근 메시지를 계속 내면서 전대 출마가 예상됐다"면서도 "최고위원이 아닌 당대표에 도전한다는 것은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위원장이 '문파'와 '개딸' 모두와 싸우며 팬덤정치를 혐오하는 민심을 등에 업을 경우 바람이 될 수 있다. 제2의 이준석 돌풍도 가능하다"며 "특히 이재명이라는 거물과 싸우게 되면 차세대 주자로서의 본인의 정치적 입지도 자연스레 강화된다. 이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9일 인천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이 열린 인천 계양역 광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