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고용노동부의 팔은 밖으로 굽었나

입력 : 2022-08-03 오전 6:00:00
대우조선해양이 분규를 끝내고 다시 작업에 힘쓰고 있다. 대우조선 대표는 사과하고, 하청업체들은 처우개선에 힘쓰기로 했다고 한다. 소망스런 일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점거 농성을 벌인 하청업체 노조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농성 노조원에 대한 경찰 수사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이 교대로 하청노조의 점거 농성에 대해 '불법'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을 시사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노조원들이 농성장에서 빠져나왔으니 이들을 수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 됐다
 
그렇지만 이뿐만 아니다. 노동부까지 나서서 이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거제도에서 전해진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은 대우조선 도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 유최안 부지회장 등 7명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대우조선 원·하청은 이들 7명의 농성으로 배를 진수하는 작업이 지연되자 노동부에 진정을 냈고, 이에 노동부가 수사를 벌이기로 한 것이다. 통영지청은 또 하청노조 조합원 중 일부가 비노조 작업자를 상대로 작업을 방해했다는 진정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의 수사는 나름대로 이해해줄 만하다. 공권력의 집행기관으로서 법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그렇지만 노동부까지 나서서 노조원을 수사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 의문이다.
 
고용노동부는 누가 뭐라고 해도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향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부처이다. 노동자가 회사 측으로부터 무언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경우 대신 나서서 조사하고 시정 조처할 임무를 1차적으로 띠고 있는 것이다.
 
만약 노조나 노동조합에서 모종의 잘못이나 귀책 사유가 있을 경우에도 되도록 노동자 편에서 입장을 대변하고 감싸는 것이 순리라고 여겨진다. 노조원들에 대한 수사는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에 맡기고, 노동부는 노조원에게 유리한 정황을 살펴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수사나 처벌의 강도가 가벼워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나아가서 사측의 불법행위가 없었는지도 조사해 필요한 경우 시정조치를 내려야 한다. 이번 대우조선 농성사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국방부가 군인들의 안전한 병영생활과 처우개선에 힘써야 하고, 교육부가 학생과 교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힘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학생이 혹시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켰을 경우 되도록 정상참작이 되도록 교육당국이 노력하듯이 말이다.
 
나아가서 이번 대우조선의 경우처럼 고질적인 하청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그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물론 노동부 홀로 나선다고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산업자원부나 기획재정부 혹은 국토교통부나 금융위원회 등 다른 경제부처의 목소리가 다르고 경찰과 검찰 등 법집행기관의 입장 역시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관은 주로 기업 측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노동자의 어려움이나 왜곡된 하청구조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때로는 조장하는 위치에 있다. 포도주 마시는 사람과 물 마시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듯이, 이런 부처와 노동부의 입장은 어긋나게 된다. 따라서 노동부가 나선다고 해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럴수록 노동자의 입장을 들어주고 지켜주는 노동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우리말 속담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그 어느 부처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런 사태가 장기화하고 되풀이되면 역효과만 생기기 쉽다. 이를테면 최근 조선업계의 핵심 난제로 대두된 인력확보난은 해결하기 더 어려워진다.
 
지금 노동부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노동부의 팔은 바깥으로 굽은 것 같다. 노동자는 노동부의 최대고객이다. 그런데 고객의 권익을 지켜주려고 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압박한다면 순리를 거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마치 농사의 여신 데메테르가 인간 세상의 농사를 망치기 위해 황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던 설화와 흡사하다.
 
정부가 강조하는 대로 법과 원칙은 중요하다. 그것이 무너지면 국가사회는 제대로 존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방식이 사물의 이치와 공감에서 벗어나면 곤란하다. 각자 본연의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함으로써 원칙은 실현되는 것 아닌가.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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