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책임정치'의 실종

입력 : 2022-09-02 오전 6:00:00
지난 2월25일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서울 마포구 SBS 프리즘타워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두 번째 TV 토론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리위 징계로 이준석 당원권 정지-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체제 전환-'내부총질' 텔레그램 메시지 유출-최고위 와해로 비상상황 선언-상임전국위 및 전국위 의결로 주호영 비대위 출범-이준석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법원 인용으로 주호영 직무 정지-권성동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새 비대위 출범 결의. 
 
복잡한 듯 보이지만 흐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준석 축출'이다. 그리고 '비상상황'의 직접적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공했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이 한 마디로 국민의힘은 '의도적'이자 '집단적' 비상상황으로 돌입했고, 법원 판결로 의도하지 않은 '진짜' 비상상황을 맞게 됐다. 윤핵관의 내분, 특히 권성동 대 장제원의 충돌과 당권주자들의 이견은 권력 암투마저 더했다. 
 
새정부 출범 넉 달, 지방선거 대승 석 달도 안 돼 집권여당이 지도체제조차 갈피를 못 잡게 된 데에는 윤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는 이준석 대표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들켜 놓고도 해명 한 마디 없이 숨었다. 출근길 마주하던 기자들 질문을 일정 핑계로 피했으며 이후에는 휴가를 떠나버렸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민생 안정과 국민 안전에 매진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들이 어떠한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 제대로 챙길 기회가 없었다"며 넘어가려 했다.
 
민생 안정과 국민 안전에 매진했는데, 국정 지지도는 20%대로 추락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어떤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 챙길 기회조차 없었는데, 당대표 직무대행에게는 "우리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며 채근까지 했다.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는 충성 다짐을 확인하고서는 '체리 따봉' 이모티콘으로 흡족함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극심해진 당 혼란에 당정 분리를 이유로 '나 몰라라' 발을 뺐다. 이준석과의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무대응 기조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준석이 아닌 국민에게는 최소한의 '유감' 언급은 있었어야 마땅했다. 
 
이 같은 비겁함은 여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문자를 작성한 대통령에게는 단 한 마디 책임을 묻지 못하면서, 이를 유출한 권성동 원내대표만 몰아붙였다.(물론 권성동의 실책도 한두 개가 아닌지라, 책임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차기 당권 도전에 나서겠다는 이들도 집권 초기 막강한 대통령 위세 앞에 조아렸다. 경기지사 경선 패배로 윤 대통령과 척을 지게 된 유승민 전 의원은 "본인의 문자로 이 난리가 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이라며 대통령을 직격한 뒤 "(어찌)이 당에 의인 열 명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한탄했다.
 
지난 7월26일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핸드폰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 결과, 권성동은 원내대표 자격으로 당대표 직무대행에 이어 비대위원장 직무대행까지 맡게 됐다. 당내 압박에 당대표 직무대행 사의를 표명했음에도 원내대표 직은 고수했고, 또 다시 원내대표 권한으로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을 맡는 코미디가 연출됐다. 법원이 '비상상황이 아니다'며 이준석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음에도, 당헌 96조 개정을 통해 다시 비대위 카드를 내미는 촌극도 이어졌다. 입법을 다루는 이들이 소급적용을 바라는 무지몽매한 길로 내몰리게 된 원인은 '이준석에 대한 대통령의 뿌리 깊은 분노'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이준석의 '성접대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은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 경찰이 혐의를 확인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해도, 대다수 국민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못할 상황이 됐다. 이준석은 성접대 족쇄에서 풀려나는 동시에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탄압 받는 희생적 이미지만 더하게 됐다. 바로 '검찰총장 윤석열' 이미지다. 게다가 법원 판결을 확인한 이상 제2, 제3의 비대위도 무산시킬 자신도 생겼다. 이쯤 되면 청출어람이다. 
 
비겁함은 대통령과 여당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이재명 민주당 신임 당대표는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는 부인 김혜경씨 혐의를 '7만8천원 사건'으로 의도적 축소, 규정했다. 해당 사건으로 경찰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그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고 차단하기에 바빴다. 공무원을 사적 개인 심부름에 동원하고도 "도움"이라며 말장난을 더했다. 이외에도 그의 정치 이력에서 금방 들통날 거짓 해명은 부지기수다.
 
'책임정치' 대신 '책임회피'. '비호감'에 이어 '비겁함'의 대결로까지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부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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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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