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투표 부결에도 고개숙인 정의당, '재창당' 결의로

정의당 "가난한 시민 제대로 대변 못한 게 위기 원인"
17일 대의원대회 열고 재창당 결의안 추진 노력키로

입력 : 2022-09-05 오후 5:16:11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의원들이 5일 오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원 총투표 관련 의원단 합동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 장혜영, 류호정, 강은미, 배진교 의원.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대한민국 정당사 최초로 진행된 '비례대표 국회의원 전원사퇴 권고' 당원 총투표가 부결됐음에도 정의당은 쇄신 요구라는 거센 후폭풍마저 벗어나지는 못했다. 한숨 돌리는 대신 재창당의 길을 걷는다. 
 
류호정·장혜영·강은미·배진교·이은주(비례대표 순번)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당원 총투표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헌신한다는 정의당 역할과 책임을 기대했던 시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렸다"며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많이 부족했다. 이번 투표에서 찬성한 사람, 반대한 사람,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 당의 혁신과 쇄신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라며 "우려와 비판에도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담겼다. 성찰을 통해 더 나아가고 시민 앞에서 서겠다"고 다짐했다.
 
정의당은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비례대표 의원 전원사퇴 권고 여부를 놓고 권리당원 총투표를 진행했다. 전체 투표율 42.10%(7560명)에 찬성 40.75%(2990표), 반대 59.25%(4348표)로 투표안은 부결됐다. 결과는 부결이었지만, 이번 투표 자체가 지니는 정치적 무게는 컸다. 정의당 역시 "이번 당원 총투표 발의에 나섰던 당원들, 찬반 의사를 밝힌 모든 당원들의 혁신과 재창당의 필요성, 당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엄중한 요구를 깊이 통감하고 무겁게 받아 안겠다"고 시종일관 몸을 낮췄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의원들이 5일 오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원 총투표 관련 의원단 합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 장혜영, 류호정, 강은미, 배진교 의원. (사진=연합뉴스)
 
이번 투표안은 존폐 위기에 처한 당의 현실에서 비롯됐다. 정의당은 20대 대선에 이어 6·1지방선거에서 민심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으며 몰락의 길을 걷었다. 대선에서는 당내 가장 높은 대중성을 지닌 심상정 후보를 내세우고도 2.37%의 득표율에 그쳤다. 심 후보가 지난 19대 대선 기록했던 득표율 6.17%와 비교하면 결과는 더욱 초라했다. 지방선거 성적은 원외 정당인 진보당에게도 뒤지는 참패였다. 
 
무엇보다 당의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노동자와 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던 대중성은 사라졌고 페미니즘 등 소수 논리에 치중하며 민심과 괴리를 보였다. 권영길, 단병호, 강기갑, 노회찬 등 대중성을 갖춘 과거 스타들을 대신할 구심점도 사라졌다. 유일하게 남은 간판인 심상정 의원의 소명도 끝났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정의당이 있어야 할 곳인 가난한 시민들, 억압받는 시민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게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민주노동당 등의 영광을 함께 했던 원로들도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강기갑 전 대표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앞선 두 차례 선거 국면에서 양 극단이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정의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저쪽이 되면 큰일 난다'는 심리로 인해 정의당에 표가 주어지지 않았다"면서도 "지역구에 풀뿌리 기반들이 기초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부분이 그간 상당히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고 원인을 찾았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의원들이 5일 오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원 총투표 관련 의원단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 장혜영, 류호정, 강은미, 배진교 의원. (사진=연합뉴스)
 
이에 지방선거 이후 당 안팎에서는 존재감을 잃은 당을 재창당 수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당원 총투표 실시는 당이 재창당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과도 같았다. 이번 투표를 제안했던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은 이전부터 "이대로 가면 우리는 비호감 정당이 아니라 '무존재'의 정당으로 갈 것"이라며 비례대표들이 일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후 정 전 대변인은 지난달 7일 1002명의 당원 이름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사퇴를 권고하는 내용의 당원 서명부를 제출하며 당원 총투표를 위한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당원 총투표는 권리당원의 5% 이상이 서명하면 발의할 수 있는데, 1002명은 약 2만명의 정의당 권리당원의 5%가 넘는 수치다. 이후 정의당 비대위는 937명의 서명이 유효하다고 보고 의결을 통해 당원 총투표가 성사됐다. 이후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운동 및 투표일정 등을 공지했다.
 
정의당은 총투표로 확인된 당원들의 요구와 의지를 모아 재창당 결의가 오는 17일 대의원대회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정의당은 3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재창당 결의안을 심의하고 이를 대의원대회에서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재창당 결의안에는 △대안사회 비전과 모델 제시 △당 정체성 확립 △노동 기반 사회연대정당 △정책 혁신 정당 △지역기반 강화 △당 노선에 따른 조직운영체계 △전술적 연합정치 △당원 사업 등 8가지가 포함됐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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