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에이팜·잔다리…'세계 음악 한국으로'

홍대와 울산…전 세계 이색 음악·공연 한 자리에
"한국은 흥미진진한 국가…세계 음악 시장에서도 독보적"

입력 : 2022-09-06 오후 5:01:4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국은 지금까지 내가 방문해 본 국가 중 가장 흥미진진한 국가 임에 틀림 없습니다. 음악 뿐 아니라 영화, 텔레비전 콘텐츠, 음식... 해외로 뻗어가는 문화들이 너무나도 다채롭고 이색적입니다."
 
지난 3일 울산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장에서 만난 글래스톤베리 기획자 스티브 사이먼즈가 말했다. 영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야외 대중음악 축제 글래스톤베리의 무대 프로그래머로 지난 25년 간 일해온 인물. 글래스톤베리 안에서도 그는 지독히 독창적인 공연을 만들어 내는 기획자로 유명하다. 라디오헤드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현대 미니멀리즘 작곡가 스티브 라이시의 작품을 연주한 무대부터 델트론 3030의 아프리카 퓨처리스트 힙합을 클래식과 결합시키는 식으로 장르 벽을 허물어왔다.
 
스티브는 본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 음악가들은 분명 세계 음악 시장에서도 독보적이다. 전통적인 의복과 악기를 팝 음악에 결합해내는 시도들을 특히 눈 여겨 보고 있다"고 했다.
 
한국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을 세 차례(2014·2015·2019년) 초청했던 말콤 헤인즈, 한국 매스록 밴드 코토바(2020년)를 섭외한 마틴 엘본 등 글래스톤베리 내 다른 기획자들과도 교류한다는 그는 "한국 밴드 이날치를 글래스톤베리 무대에 올리는 것이 내 최종 목표"라 했다.
 
스티브가 이날 이 곳에 온 것은 '울산에이팜' 행사(2~4일, 울산문화예술회관 개최) 때문이다. 전날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상자루와 줄헤르츠의 무대도 지켜봤다.
 
울산 에이팜에서 열린 첫 세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각국 음악시장 경향 공유'. 임희윤 동아일보 기자(왼쪽부터), 데이비드 차베즈 시카고월드뮤직페스티벌 큐레이터, 존 후앙 NPCC 큐레이팅 컴퍼니 설립자, 키이스 탄 칸지안뮤직·슬레이트엔터테인먼트 대표. 사진=울산 에이팜
 
2012년 시작해 올해로 11회째 이어져 오고 있는 에이팜은 한국 음악과 아티스트를 국제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올해도 19개국 50여명의 국내외 초청 인사들과 50여명의 국내 음악 관계자, 17개 국내외 공연팀이 참가했다.
 
행사 첫 날인 2일에는 한국을 비롯해 글로벌 음악 시장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세션들도 열렸다. 미국과 대만, 싱가포르, 한국의 음악 전문가들이 각국 시장 상황을 비교하고 팬데믹 이후를 공유하는 순서('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각국 음악시장 경향 공유')가 특히 주목할 만 했다.
 
20년 가까이 시카고월드뮤직페스티벌 큐레이터로 일해온 데이비드 차베즈는 토론 이후 기자와 인터뷰에서 "전통 기반의 한국 현대 음악들은 미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창적인 스타일"이라며 "특히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전통음악에 접근하는 방식들을 신선하게 생각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무질서한 미국에 비해 마스크 의무제로 안전하게 공연이 열리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이 토론의 좌장을 맡은 임희윤 동아일보 기자는 "최근 몇 년 새 글로벌 팬덤을 구축한 K팝 신드롬 이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한국 음악 시장은 폭발적 성장을 이룩했다"며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트렌디한 현대 음악까지 확장하는 이른바 '퓨전 국악' 역시 2~3년 새 폭발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짚었다. 임 기자는 "2019년 이날치 이후 퓨전 국악에 관한 TV 프로그램까지 생겨날 정도로 신드롬이 일고 있다. '케이팝보다도 더 힙한 음악'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이제는 반대로 아이돌 음악에 한국 전통음악을 결합하는 역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개최 이래 16년 만에 역대 최대 관객을 동원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등의 사례를 팬데믹 이후 한국의 대면 전환 공연 사례로 해외 관계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현재의 국제 음악 교류 분석과 그에 따른 해외시장 진출 전략'란 주제의 세션도 눈 여겨 볼만 했다. 잔다리페스타와 DMZ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을 공동 기획하고 운영해온 이수정 알프스 이사는 이날 초국적 플랫폼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음악 경험이 중요해진 21세기의 변화('민주적 보급 통한 문화 향유')와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없어지고 재창조 콘텐츠가 나오는 양상('민주적 참여를 통한 문화생산')을 짚어가며 부산 음악 신을 해외 진출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해외 관계자들에게 소개했다. 해외 관계자들 역시 발제 이후 세이수미를 필두로 보수동쿨러, 해서웨이, 소음발광 같은 부산 출신 팀들에 큰 관심을 보였다.
 
울산 에이팜에 참석한 참가자들. 사진=울산에이팜
 
K팝 신드롬 이후 독특하고 다양한 한국 음악을 찾으려는 해외업계의 갈증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에이팜이 열린 기간, 서울의 홍대에서는 올해 11회를 맞은 '잔다리 페스타'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 축제는 세계로 뻗어나갈 한국 음악가들을 '매의 눈'으로 포착한 경우가 적지 않다. '범 내려온다'로 신드롬을 일으키기 전 이날치는 2019년 이 축제의 쇼케이스 무대에 섰다. 국악과 포스트 록을 결합한 밴드 잠비나이, 국내 대표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도 이 축제를 거쳐갔다. 시간을 당겨 미래 부상할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면, 꼭 가봐야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프랑스, 대만, 태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 해외 각지에서 온 음악 업계 관계자들과 뮤지션들, 관객들로도 성황을 이룬다.
 
올해 실리카겔, 글렌체크처럼 이미 실력이 검증된 국내 팀들 뿐 아니라 최근 떠오르는 팀들도 세계 관계자와 음악 관계자와 음악가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특히 3인조 밴드 봉제인간(술탄 오브 더 디스코·파라솔 출신의 베이스·보컬 지윤해, 전 장기하와 얼굴들의 드러머 전일준, 혁오밴드의 기타리스트 임현제 결성)은 무대에 서자마자 벼락처럼 내리치는 광란의 사운드로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올해 처음 잔다리페스타를 찾은 이탈리아 베르가모 출신의 밴드 바나리누(vanarinu) 멤버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올해 잔다리에 처음 참여한다는 이탈리아 베르가모 출신의 밴드 바나리누(vanarinu) 멤버들은 "공연장에서 단지 감상만 하는 이탈리아 관객들과 달리, 잔다리의 관객들은 미쳐 있어 좋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문화가 남다른 것 같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프랑스 출신의 밴드 더로데오(Rodeo) 멤버들 역시 "잔다리페스타를 계기로 한국 문화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어제 한국 한옥마을을 다녀왔다"며 태극기가 그려진 모자를 보여줬다. 이들 모두 "실리카겔과 봉제인간의 무대를 보고 충격 먹었다"며 "오리엔탈리즘적인 색채가 서구식 사운드와 뒤섞인 한국 밴드들의 사운드에 관심이 생긴다. 유럽 관객들도 분명 좋아할 만한 것"이라고 했다.
 
3일간 서울 홍대와 울산에서는 '음악 지구본'이 돌았다. 세계 음악 시장은 지금 한국을 향하고 있다.
 
올해 처음 잔다리페스타를 찾은 프랑스 출신의 밴드 더로데오(Rodeo) 멤버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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