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대형마트에 상품배송을 하는 위탁업체와 계약한 배송 기사도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된 배송 기사도 노동 3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는 최근 유진로지스틱스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배송 기사는 원고가 미리 만들어 둔 배송계약서를 사용해 배송 계약을 체결하고, 원고가 배송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정한다고 볼 수 있다”라며 “원고는 배송 기사가 회사 간섭 없이 배송권역 등 업무와 관련된 일부 사항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배송계약 내용 자체를 변경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원고는 배송 기사 업무수행 과정을 평가하고 불이익을 부과하는 등 배송 기사의 업무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지휘와 감독을 하고 있다”라며 “원고는 배송 기사가 고객에게 끼친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진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이 사건 배송 기사가 원고의 사업을 통해 배송시장에 접근한 뒤 발생하는 사정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오늘날 대형마트의 유통 구조를 고려할 때 배송 기사가 원고와 배송계약을 체결한 것은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배송 기사가 노동조합을 통해 원고와 대등한 위치에서 배송계약 조건을 교섭할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라며 “설령 배송 기사의 전속성이나 소득 의존성이 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거나, 이 사건 배송 기사가 근로기준법에 규정한 근로자의 요건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해도 배송 기사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까지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유진로지스틱스와 계약을 체결한 배송 기사 150여명이 배송계약 조건 변경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사측과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당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배송 기사들은 마트산업노동조합 소속으로 2020년 8월5일과 7일 유진로지스틱스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유진로지스틱스는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해당 내용을 공고하지도 않았다. 노동조합법 제14조에 따르면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사용자는 노동자의 교섭 요구를 받은 날부터 7일간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이에 마트산업노동조합이 2020년 8월10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교섭 요구 공고 등에 대해 시정 요청을 했다. 중노위는 같은 달 20일 “배송 기사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라며 단체교섭 요구권을 인정했다. 또 유진로지스틱스가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진로지스틱스는 약 한달뒤인 9월10일, 중노위 결정에 불복 의사를 밝히며 중노위에 재심신청을 냈다. 중노위는 같은 달 18일 초심 결정과 같은 이유로 유진로지스틱스의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유진로지스틱스는 서울행정법원에 교섭 요구 공고에 대한 재심결정 취소 처분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