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8일 오전 국회 제400회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당대표 취임 후 첫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미국 순방 중 윤석열 대통령의 막말 논란 등에 대해 ‘제1야당으로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다만, 이 대표는 민생위기 속 야당 대표가 정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의식, 공세 수위는 낮췄다. 이 대표는 4년 중임제 등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표는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총성없는 전쟁인 외교에 연습은 없다. 초보라는 말로 양해되지 않는 혹독한 실전”이라며 "제1당으로서 이번 외교참사의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민주당은 이번 순방을 빈손, 비굴, 사고 외교로 규정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교섭단체대표 연설이 시작되기 30분 전까지 연설문을 수정하는 등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안타깝게도 며칠 전 대통령의 영미 순방은 이 정부의 외교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조문 없는 조문외교, 굴욕적인 한일 정상회동은 국격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또 “전기차 차별 시정을 위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논의와 한미 통화 스와프는 순방의 핵심 과제였음에도 꺼내지도 못한 의제가 됐다”고 했다.
앞서 외교부는 올해 5개 미국 회사와 계약을 맺고 23억원을 넘는 예산을 투입해 미 의회 관련 법안, 제도 등에 대한 자문을 받기로 했지만 정작 IRA에 대한 동향 보고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 때에도 윤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만남 자체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미 통화 스와프는 치솟는 원달러 환율을 진정시킬 외환시장 대책으로 기대됐지만, 빈 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민주당은 전날 의원총회를 열고 소속의원 169명 전원 명의로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당론으로 추인하고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제1당인 민주당은 다른 당의 협조 없이도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 이 대표도 “제1당으로서 이번 외교참사의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다만, 해임건의안은 강제성을 띠는 법률안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이 국회의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때문에 윤 대통령이 거부할 경우 박 장관의 해임은 실현되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수용할 경우 막말 등 순방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에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이 막말 논란이 담긴 영상을 첫 보도한 MBC를 연일 규탄하고 나선 것도 전선을 돌리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이번 논란을 ‘자막 조작 사건’, ‘제2의 광우병 사태’ 등으로 규정하고 MBC에 총력 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책임을 국민과 언론, 야당에 뒤집어씌우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8일 오전 국회 제400회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동료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연설에서는 이 대표의 대표적 브랜드인 ‘기본소득’도 다시 등장했다. 이 대표는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을 넘어 기본사회 30년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각자도생을 넘어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기본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민생 위기와 연결시켜 정책적 대안을 제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감내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예상대로 국민의힘은 즉각 이 대표의 연설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비판에 나섰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재명식 포퓰리즘 ‘기본소득’이 대선, 지방선거를 돌고 돌아 또 다시 등장했다”며 “기본소득은 거대 야당이 말만 외친다고 실현되지 않는다”고 깎아내렸다.
이 대표가 다시 기본소득을 꺼내든 것에 대해 당내 평가도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논쟁해볼 만한 주제라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윤 대통령을 겨냥한 연설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당 차원에서 윤 대통령의 막말 논란에 대해 ‘외교참사’로 비판하고 있는 만큼 보다 세게 지적했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반면 민생의 어려움 속에 야당이 정쟁을 주도할 수 없다며 당대표가 적절한 수위로 지적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 대표는 당대표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민생 현안에도 집중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정부의 원전 비중 확대를 비판하면서 국회 기후위기·탄소중립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또 지방소멸 대응을 강조하며 5대 돌봄 국가책임제, 비정규직 공정수당제, 40만원 기초노령연금, 선택적 모병제, 정년연장 확대, 생활동반자제 도입과 '인구위기·초저출생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제시했다. 또 이 대표는 법인세 인하와 3주택 이상 종합부동산세 누진제 폐지, 서민예산 삭감 등을 언급한 뒤 "서민 지갑을 털어 부자 곳간을 채우는 정책"이라며 "민주당이 최선을 다해 막겠다"고 약속했다.
개헌도 제안했다. 이 대표는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정치를 가능하게 하고, 국정의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고 개헌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개헌의 내용으로는 4년 중임제 외에도 결선투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감사원의 국회 이관, 생명권·환경권·정보기본권·동물권 도입, 직접 민주주의 강화 등도 언급했다. 이 대표는 "대통령 임기 중반인 22대 총선이 (개헌)적기"라며 "올해 정기국회가 끝난 직후 국회 내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 2024년 총선과 함께 국민투표를 하면 비용을 최소화하며 '87년 체제'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개혁 과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 등 선거법 개정,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등도 제시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