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열린 '당원존' 개관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활로가 되는 분위기다. 대여 공세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며 민생 행보만 걷던 이 대표는 최근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 문 전 대통령까지 조준하자, 적극적으로 "정치보복" "야당탄압"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동안 대여 투쟁은 최고위원을 비롯해 원내지도부에 맡겼던 역할 분담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까지 정쟁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면서 이 대표의 '정치탄압' 소구력이 한층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를 계기로 윤석열정부와의 대결 전면에 섰다. 5일 여의도 중앙당사 당원존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국정감사 중인데 민생, 경제 위기가 심각하다"며 "이 심각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정치의 역할인데, (정부는)이것을 이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야당 탄압, 전 정권 정치보복에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 대표는 감사원 서면조사 통보가 알려진 지난 2일 저녁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유신 공포정치가 연상된다"며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3일에는 개천절 경축식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맡긴 권력으로 민생을 챙기는 게 아니라 야당을 탄압하고 전 정부에 정치보복을 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역시 '야당탄압', '정치보복'을 강조했다. 4일 의원총회에서도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전임자와 야당 탄압에 총동원하는 모습,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다.
이는 이 대표가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를 의식, '정치보복' '야당탄압' 등의 표현을 자제한 것과 대비된다. 이 대표는 당대표 취임 이후 '민생'에만 전념, 내분으로 자중지란에 빠진 여권과의 차별화에 주력했다. 지난달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이 기존 불송치 결론을 뒤집고 자신에게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한 데 따른 불쾌감을 표했지만, 이마저도 "야당 탄압, 정적 제거에 너무 국가 역량을 소모하지 마시라"는 당부 수준에 그쳤다. 대신, 강성 친이재명계 최고위원들을 비롯해 원내지도부가 전면에서 이 대표를 적극 엄호하며 대여 투쟁 전선을 이끌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 등 당 지도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민주당 제공, 뉴시스 사진)
그랬던 이 대표가 최근 정부와의 전면전 불사로 돌아선 것은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 시도로 여론과 당 안팎의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여론도 이 대표에게 썩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기대했던 추석 민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달 10일 공개된 MBC·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른 것으로 표적 수사는 아니다'는 응답이 52.3%였다. 다음날 발표된 SBS·넥스트리서치 조사에서도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의견이 50.3%였다. 지난달 16일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선 52.7%가 '의혹에 대한 정당한 수사'라고 평가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를 추진하면서 이 대표의 검찰 수사와 관련한 여론의 분위기도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 민주당이 주장한 정치보복, 정치탄압 정당성이 약했는데 문 전 대통령까지 감사원 조사에 포함되면서 중도층까지 결집할 계기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4일 저녁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정략적인 이유로 민주당은 신났다. 왜냐하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공격이라고 했는데 잘 안 먹히는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을 끼워 넣으면 틀이 산다"고 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도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든 사법적 문제를 들춰내려는 (검찰의)행태를 보면서 정치탄압으로 말하고 싶어도 참았다"며 "그런데 중립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할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까지 끌어들이면서 이 대표에게 명분을 준 것은 틀림없다"고 진단했다.
박범계 민주당 윤석열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장이 지난 3일 국회 소통관에서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조사'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의원들로 구성된 '초금회' 등 당내 핵심 친문 인사들까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에 반발하고 나서면서, 이 대표로서는 이들 세력도 자신의 편으로 규합이 가능해졌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 조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는 친문 인사들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는 다른 잣대로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초금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초금회 내부에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 조사를 (이 대표 수사와)같은 맥락, 정치보복으로 보고 있다"며 "두 사안과 관련해 공동전선을 펼치고 있다. 따로 대응하는 기류는 아니다"라고 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항상 외부의 위험은 내부를 결속시키는데, 문제는 (그동안)친문, 반문의 골이 워낙 깊어서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친문의 핵심인 문 전 대통령을 건드렸으니 (이 대표가)그것을 옹호함으로서 내부 결속을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이라며 "정치적 득실로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구실을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로 윤 대통령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