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미국 행정부가 바이오산업의 자국 경쟁력 강화를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한 뒤 국내 업계의 자체적인 대응책 마련을 위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는 단기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내다보지만 업계 안팎에선 장기 플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백악관은 지난달 12일 '지속가능하고 안전하며 안심할 수 있는 미국 바이오경제를 위한 생명공학·바이오제조 혁신 증진을 위한 행정명령'을 공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이 행정멍령은 미국 내 바이오산업 경쟁력 강화가 골자다. 행정명령 범위는 의약품을 포함해 원료 및 연료, 플라스틱, 농업 등 바이오 전 분야를 망라한다.
행정명령이 발표되자 국내 업계에선 직간접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부정적 예측이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 짓기로 한 공장 등 투자 유치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국내 기업들은 대응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자국 내 바이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하자 셀트리온그룹은 영향이 미미하다면서도 필요시 현지 생산시설 확보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셀트리온)
셀트리온은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을 발표한 직후인 지난달 15일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셀트리온그룹은 발표된 행정명령 상세안을 검토했으나 현재까지 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유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 내 직접 생산시설 확보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2023년 이후 미국시장에서 출시될 제품은 셀트리온헬스케어 미국법인을 통해 직접 판매 방식으로 판매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SK바이오텍의 경우 원료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공장을 증설하면서 생산량 확대 준비를 마쳤다. SK바이오텍은
SK(034730)가 지분을 100% 보유한 SK팜테코의 자회사다. 이번 공장 증설은 지난 2020년부터 진행된 사안으로 미국 행정명령과 준공 시기가 겹쳤다.
세종시 명학산업단지에 위치한 SK바이오텍은 이번 증설을 통해 생산역량을 약 190㎥에서 약 290㎥ 규모로 50% 이상 늘렸다.
SK팜테코 자회사 SK바이오텍시 2년간의 증설을 거쳐 원료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규모를 기존의 50% 이상으로 늘렸다. 사진은 SK바이오텍 세종공장. (사진=SK바이오텍)
미국 행정명령에 대비하겠다는 의지와 관계없이 국내 업체들이 제약바이오산업 내 역량 강화를 꾀하는 양상과 달리 우리 정부는 소극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 바이오 행정명령의 국내 의약품·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단기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장기 영향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산업통상자원부 내 장관급 협의체(한미 공급망·산업대화)를 활용해 한미 협상과 범정부 대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에선 미국 행정명령 이후 정부 방침이 나오기 전부터 꾸준히 중장기 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선 미국 행정명령 주요 내용과 시사점을 분석하면서 우리나라도 전략적으로 합성생물학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초격차 전략기술 육성' 정책 중 첨단바이오 기술 중점기술로 합성생물학 연구개발 지원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바이오협회 역시 미국 행정명령 발표 직후 국내 바이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입지를 다지느냐가 관건"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지금 자체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정부도 규제나 제도 개선을 통한 해외 진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선진 기술의 세계화를 도울 수 있는 장기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현재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전 세계 바이오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이니셔티브를 점하고, 미국 행정명령 발표에 따른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