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현장 총괄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이태원 참사 발생 나흘 전인 지난달 25일 핼러윈 대비 안전대책 차원에서 서울경찰청에 경비 기동대 투입을 요청했지만 인력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서장은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현안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태원 핼러윈 축제 질서 유지를 위해 서울청에 기동대를 배치해야 한다는 요청을 했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여러 차례 요청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요청했냐는 질의엔 "제가 용산서112상황실에 핼러윈 축제 관련해서 가장 효율적인 기동대를 요청하라고 지시했고, 112상황실장이 서울청 주무 부서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대답했다.
이어 "하지만 서울청이 (참사) 당일 집회·시위가 많아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이 왔었다"며 "서울청에서 기동대 지원에 대해 재차 검토했지만 집회·시위 때문에 지원이 힘들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서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핼러윈을 앞둔 주말에 이태원 등에 인파가 몰릴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결정을 하지 않은 김광호 청장 등 서울청 관계자들의 직무상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이 전 서장은 기동대를 요청한 것은 핼러윈 때 인파 사고가 우려됐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인파에 대한 안전 관리 부분에서 훈련된 기동대가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핼러윈 축제뿐만 아니라 전에 열렸던 지구촌 축제 때도 기동대를 요청했던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요청한 기동대 규모에 대해서는 "1개 제대 이상의 경비대를 요청했다"며 "구체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1개 제대 기동대가 필요하면 3개를 요청하라는 것이 평소 제 지론이었다"고 했다.
김 청장 등 지휘부에 직접 기동대 배치를 요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김 서울청장이 재차 검토했지만 집회·시위 대비 병력이 부족해 안 된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고받았다"며 "두 번의 검토 결과 기동대 배치가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제가 다시 직접 요청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현장 총괄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용산경찰서 자체적으로 집회·시위 대비 인력을 핼러윈 안전 대비 인력으로 투입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자신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전 서장은 "기동대 운영에 대해서는 서장의 권한이 아니고 서울청에서 전체 운영 권한이 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조치가 많이 필요했지만 기동대 배치 부분은 제가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 전 서장은 또 용산경찰서뿐만 아니라 이태원 파출소 차원에서도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경찰청 감찰에서 핼러윈 대비상황 확인차 이태원 파출소에 점검을 나온 것으로 안다"며 "정확히는 모르지만 파출소장이 기동대 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한 것으로 들은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용산경찰서가 교통기동대만 요청했고, 경비 목적의 기동대를 요청한 적은 없다'는 서울경찰청의 주장이 거짓이냐는 질의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은 참사 당일 오후 9시 30분께 교통기동대 1개 제대를 이태원 일대에 투입한 바 있다.
다만 이 전 서장은 "서울청으로부터 핼러윈 대비 경비계획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은 없지만, 핼러윈 축제를 철저히 대비하라는 지시는 두세 번 정도 받은 기억은 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실 이전 때문에 용산경찰서 업무 부담이 과중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경호나 경비 쪽은 (부담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전 서장은 또 이태원 참사 현장에 늦게 도착한 것은 실제 벌어진 상황을 전혀 보고받지 못한 탓이라고도 주장했다.
이 전 서장은 "그날 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단 한 건의 보고도 받지를 못했다"며 "이태원 참사 상황을 알게 된 시점은 오후 11시경"이라고 말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45분 뒤에서야 정확한 상황을 인지한 셈이다.
그는 당일 오후 집회 관리 업무를 마치고 용산경찰서 인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오후 9시 47분께 식당을 나섰다. 식당과 참사 현장까지는 2㎞ 정도 거리지만 차로 이동하려다 1시간여가 흐른 오후 11시 5분께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이 전 서장은 "무전녹취록과 통화기록도 있겠지만 오후 9시 57분경에 녹사평역에 도착해서 당시 현장 관리하던 112상황실장에게 상황을 물었다"며 "사람이 많고 차가 정체되고 있으나 특별한 상황은 없다고 보고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당일 오후 9시 57분은 참사 발생 18분 전으로,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이미 9건 접수됐던 시점이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발생 1시간 21분 뒤인 오후 11시 36분에 서울청장에 참사 사실을 보고한 뒤 이튿날 오후 10시까지 현장을 이탈했다는 의혹에 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는 "이태원 파출소 옥상에서 현장 응급지휘를 하고 있었다"면서 "중간에 나와서 현장을 보고 다시 올라가서 지휘했다"고 밝혔다.
이 전 서장은 "고인 분들과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당시 용산경찰서장으로서 참담한 심정이고 무한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를 표했다.
이 전 서장이 참사 이후 공식 석상에서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오늘 현안질의에 나온 이유는 그간의 진상을 정확히 말씀드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나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라며 "진상규명 차원에서 모든 것을 사실대로 진술하겠다"고 말했다.
또 "당시 현장 경찰은 한 분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손이 덜덜 떨리도록 구조작업을 했다"며 "그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질책은 현장 지휘관인 제가 다 받겠다"고 했다.
이달 7일 업무상 과실치사상·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입건된 이 전 서장은 21일 경찰 특별수사본부에 처음 출석해 피의자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