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 주재 교섭단체 원내대표 주례회동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부대표, 주 원내대표, 김진표 국회의장.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관련해 "예산안 처리 이후에 당내 동의를 얻어서 했으면 한다"며 진전된 안을 내놨다. 특히 시점을 '예산안 처리 이후'로 잡으며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야당 협조를 조건으로 국정조사 협상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다만 국민의힘 당론이 '선수사 후국조'였던 만큼, 국정조사 거부 의사를 내비쳤던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 및 대통령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주 원내대표의 고민으로 떠올랐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에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저희도 공감한다"며 "다만 예산 법안 통과기일이 12월2일이고, 정기국회는 9일까지이다.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예산 처리 이후에는 협의에 의해 국정조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어 "예산안 처리 후에 합의 국정조사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예산안 처리 후에 합의로 국정조사를 할 길을 찾아보자고 얘기했다"면서도 "의원총회로 다시 의원들에게 뜻을 물어보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같은 날 열린 여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경찰 수사가 우선'이라며 국정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이미 국민의힘은 지난 14일 중진부터 재선, 초선 의원까지 모임을 갖고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당론으로 모았었다. 특히 윤핵관 핵심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은 "국정조사는 정치 공세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 의원들과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주 원내대표가 국정조사 수용 가능성을 시사한 건 자칫 국정조사가 민주당의 독무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앞서 21일 야 3당(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이 국회에 제출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계획안에는 △용산 이태원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 및 책임소재 규명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전 안전대책 수립 및 집행 실태 등이 조사범위로 명시됐다. 대상 기관에는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등이 포함됐다. 만일 국민의힘이 국정조사에 합류할 경우, 조사 범위와 대상은 합의 하에 수정될 수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사실상 조사나 수사가 끝나고 난 후 책임이 분명해지면 처벌이 필요한 사람들은 자신의 몫을 지게 될 것"이라며 "그 사람들이 민간인 신분이 된다면 국정조사 때에 무슨 자격으로 부를 수 있겠는가. 이를 야당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원내대표의 자리 성격을 들어 "당대표는 야당을 공격해야하는 자리이면 원내대표는 야당과 협상을 해야하는 자리이다. 이것은 여야 모두 마찬가지"라며 "박홍근 원내대표도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기에 각 당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선에서 협상의 길을 터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조사를 해야한다는 여론의 지지도가 높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17일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사가 공동 시행한 전국지표조사(NBS) 집계 결과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55%이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18일 발표된 뉴스토마토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65.1%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동참해야 한다고 답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주 원내대표가 당을 설득하는 과정도 없이 국정조사 협의를 강행하면 윤핵관 등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고, 리더십에 상처가 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국정조사는 법적 구속권이 없어서 국정감사처럼 질의하는게 전부"라며 "국정조사가 정부에 부담이 되는 건 자명한데, '그걸 굳이 해야하냐'라는 기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앞서 원조 윤핵관인 권성동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던 지난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합의를 했다가 대통령실과 윤핵관의 반발로 합의를 번복, 리더십에 흠집을 낸 사례가 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