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정치

입력 : 2022-11-24 오전 6:00:19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이 당 회의 석상에서 ‘김건희 조명’ 얘기를 꺼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김건희 여사의 사진을 자연스러운 봉사 과정에서 찍힌 사진이 아니라 최소 2~3개 조명까지 설치해서 사실상 현장 스튜디오를 차려 놓고 찍은 컨셉 사진으로 분석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김건희 여사가)자국도 아닌 외국에서, 자신이 아닌 아동의, 구호봉사가 아닌 외교 순방에서 조명까지 설치하고 했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금기사항을 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김 여사 방문 당시 조명을 사용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이 그런 일을 거짓으로 둘러대면 금방 들통이 날 테니 사실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장 최고위원은 초점을 이동한다. “외신과 사진전문가의 분석을 인용했을 뿐”이라며 “허위사실 유포? 이제는 인용도 문제인가?”라고 맞섰다. 그런데 장 최고위원이 근거로 제시한 영상 분석은 ‘에펨코리아’라는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된 신뢰하기 어려운 글이었다. ‘사진전문가의 분석’이란 것도, 자신을 사진사라고 소개한 누구인지 알 수조차 없는 네티즌의 SNS 글이었다. 그리고 ‘외신’은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이 전부였다.
 
온라인에 올라온 출처 불명의 글들을 갖고 ‘외신과 사진전문가’를 팔았으니 무척 민망하게 되었다. 김 여사가 조명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면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른 누구의 분석을 인용했고 아니고는 그 다음의 얘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장 최고위원은 사과는커녕 “언론과 야당에 재갈을 물리고 걸핏하면 압수수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참 잔인한 정권”이라며 “야당 정치인으로서 진실을 밝히고 권력에 맞서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새삼스러운 장면은 아니다. 같은 당의 김의겸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바 술자리 의혹을 터뜨렸다. 제보를 받았다며 7월19일 밤 술자리에 간 기억이 있느냐고 묻고는 "김앤장 변호사 30명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자리에 합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첼리스트라는 그 여성의 대화 녹취물은 애당초 신빙성이 희박한 것이었다.
 
김 의원의 폭로성 질의 이후로 제보자들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사실들이 속속 나왔다. 김 의원이 술자리 동석자라고 지목한 이세창씨와 여성 첼리스트의 위치정보를 경찰이 확인했더니, 문제의 그 시간대에 다른 곳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밤 시간에 어디 있었는가를 추궁하는 전 남친에게 둘러대느라 했던 말이 녹취돼 본인도 모르게 유튜브 채널 ‘더탐사’에 넘겨지는 바람에 일이 커져버렸다는 정황들도 나온다.
 
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대통령이 새벽 시간에 수십 명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는다는 것도, 김앤장 변호사 30명이 그 시간에 집결한다는 것도 애당초 신빙성이 없는 얘기였다. 그러나 민주당까지 ‘제2의 국정농단’을 거론하며 판을 키웠다. 그러나 김 의원도 민주당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어쩌면 사실 아님이 드러나도 끝까지 버티는 태도가 최선이라고 학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이재명 대표다. 자신의 최측근인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이 구속되자 검찰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저의 정치적 동지 한 명이 또 구속됐습니다. 유검무죄 무검유죄 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조작의 칼날을 아무리 휘둘러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음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영장에 기재된 정 실장의 혐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과 증거인멸교사 등 4개 혐의다. 이 대표는 모든 것이 검찰의 조작이라는 주장이지만, 범죄혐의가 소명되었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한 것은 법원이다.
 
지난해 10월 이 대표는 “측근이라면 정진상, 김용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해 정 실장이 최측근임을 스스로 공언한 바 있다. 이 대표 그룹에서 정 실장의 위상은 먼저 구속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보다 한 단계 높은 측근 중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측근들이 연이어 구속되었는데도 이 대표는 사과의 말 한마디 없다. 자신의 최측근들이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과 유착되어 검은 돈을 주고받았다면, ‘대장동은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해왔던 이 대표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도 당 대표도 사과라고는 할 줄 모르니, 다른 국회의원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정치학자 파커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과 모순되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들은 자기의 신념을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옹호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거짓임이 드러나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들은 파머의 설명 그대로다. 염치들이 없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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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