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왼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전격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한 뒤 실시한다는 게 여야 합의다. 24일 국정조사 시계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예산안을 빨리 처리할수록 국정조사 시간이 확보된다. 윤석열정부의 첫 예산안을 최대한 원안 그대로 통과시켜야 하는 여당으로선 이를 이용해 협상에 나서고, '민생예산 삭감', '부자 감세'라며 대대적인 칼질을 예고했던 민주당도 적당히 수용하면서 국회의 예산안 심사가 부실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여야 합의문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은 24일부터 45일간이다.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한 직후 기관보고, 현장검증, 청문회 등을 실시한다"고 합의했으니, 예산안을 법정 시한인 12월2일까지 처리하고 다음 날부터 국정조사 일정에 들어간다면 사실상 한 달가량의 시간만 남은 셈이다.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줄다리기는 치열하다. 야권은 이날 오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대표 민생예산'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의결된 예산안에는 앞서 정부가 삭감한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 5조6000억원을 되살려 5조9409억원을 증액하는 안이 담겼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분양주택 예산 1조1393억원은 삭감됐다.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은 이에 반발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이재명 대표가 지난 22일 "삭감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반드시 회복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던 사안이기도 하다.
정부의 다음 해 수입을 결정하는 세법에선 더욱 물러섬이 없다. 민주당은 정부의 금융투자소득세 유예·법인세 인하·종합부동산세 완화·상속세 인하 등 예산부수법안에 대해 '부자 감세'라고 맞서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개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가장 치열하다. 당정은 금투세 시행을 또다시 2년 유예하고 주식양도세 비과세 기준액을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년 시행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시행을 유예하는 대신 비과세 기준액을 늘리지 않는 중재안을 내놨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인세, 종부세, 상속세 모두 지난 22~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심사됐지만 결국 결론을 찾지 못하고 보류됐다.
여야 신경전이 거세 이태원 참사 발생 전까지만 해도 예산안 심사가 법정 기한을 넘겨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졌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예산이 12월2일 통과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연말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부터 진짜 입법전쟁, 예산전쟁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예산안 처리가 국정조사 일정과 맞물리면서 여야 협의가 급물살을 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안을 반대하던 민주당 입장에서 준예산 국면까지 가는 것도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켰다간 여당으로부터 '민주당 때문에 국정조사를 못 하고 있다'는 프레임까지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여야 모두 국정조사에 집중해 '민생 예산'에 관심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보건복지 전문가는 "돌봄 관련 예산도 대폭 삭감되고, 감염병을 대비할 보건의료 분야는 의료민영화 예산만 편성된 채 공공병원 지원예산은 책정되지도 않았다. 민주당과 여러 차례 만났으나 별로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