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외풍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신한금융지주에서 예상을 깬 수장 교체가 이뤄지면서 금융권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금융지주사 회장은 물론 자회사 경영진들도 경영 성과만으로는 연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신한지주(055550)) 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 1인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용퇴를 결정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조 회장 연임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였지만, 지난 8일 차기 신한금융 회장으로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내정됐다. 갑작스러운 조 회장의 후보 사퇴와 진 행장 내정을 두고 외압설, 정부와의 교감설 등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 퇴진이 형식은 자진 사퇴지만 금융당국 눈치를 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한금융은 재일교포 주주들의 영향력이 막강해 정부 입김이 작용할 소지가 적어 조 회장이 무난하게 연임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 다수였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지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 회장이 연임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조 회장은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과 세대교체를 통한 조직변화 필요성을 이유로 용퇴를 결정했다"며 "사퇴를 결정한 것은 차기 후계 구도까지 생각한 조 회장의 단독 결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신한금융을 시작으로 연말, 연초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지주 회장들도 줄줄이 교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 인사도 연임보다는 교체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연임이 유력했던 손병환 농협금융 회장은 관료 출신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급부상하면서 연임 행보가 불투명해졌다. 손 회장은 임기 내내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렸고, 차기 회장 인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앙회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고 연임이 확실시됐지만, 최근 중앙회가 이 전 실장을 차기 회장으로 낙점하자 연임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 행보에도 변수가 생겼다. 손 회장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가 확정돼 연임에 큰 걸림돌이 생겼다. 중징계를 받은 금융회사 임원은 금융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돼 연임이 불가능하다. 또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나서 손 회장에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경고한 만큼, 금융당국에 반기를 들고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지난 3월 임기를 시작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086790) 회장의 경우, 아직 남은 임기가 많아 정권의 외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 있지만 해외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징계소송 리스크가 남아있다. 함 회장은 금융당국으로부터 DLF 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문책경고를 받은 후 이에 불복하는 중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3월 1심 소송에서 패소했다.
다만 현재 DLF 징계 취소 항소심이 이어지고 있고, 최종 법적 판단이 나오기까지 2~3년이 소요된다.
지난 2020년 3연임에 성공한 윤종규 KB금융지주(
KB금융(105560)) 회장은 내년 11월에 임기가 만료된다. 윤 회장은 사모펀드 사태로 인한 사법 리스크나 눈에 띄는 흠결 사유 없이 무난하게 임기를 수행하고 있으나,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이 물갈이 압박을 받는 상황을 감안하면 4연임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CEO 거취에 정권의 외풍이 거세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 되고있다"면서 "금융회사 스스로가 자정작용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아닌 관료출신, 친정권 성향의 인사들을 낙점해 지배구조를 바꾸려 한다면 금융사 내분을 초래하고 금융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진(왼쪽부터) 신한카드 사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이 8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신한금융그룹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면접에 각각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