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윤석열정부의 '북한 방송·통신 선제적 개방'을 주목한다

입력 : 2022-12-20 오전 6:00:00
북한 조선중앙TV 화면. (사진=뉴시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진지맨이라 할 만하다. 외모와 제스처가 그렇고 어눌한 말투까지 보태면 더욱 그렇다. 농담도 거의 없다. 이런 전임자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윤석열 대통령은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어투나 제스처가 아니다.
 
집권 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유례없이 낮은 데는 그가 국정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느냐는 불신 요인이 크다.
 
그는 ‘담대한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맞춰 ▲대규모 식량공급 프로그램 ▲발전·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교역 위한 항만·공항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 기술지원 프로그램 ▲병원·의료 인프라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지원 프로그램 등 6가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담대한’지 여부를 제3자가 아니라 제안 당사자가 평가하고 작명한 것도 어색하지만 그 정도는 넘어가자.
 
문제는 이런 종합적인 대북지원 구상을 밝히면서, 김대중 정부 이후 실질적인 남북협력이 높은 수준으로 진행됐던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다는 점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그 이유일까. 아니다. 윤 대통령이 말한 6개 사업도 모두 제재 대상이다. 현재의 대북제재는 금융망 접근뿐 아니라 주사기 금속바늘조차 막는 수준이다.
 
때문에 이전 정부에서 한 것들은 빼고 새 정부 브랜드로 새로운 사업을 해보겠다는 정치적 목적이거나,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다. 남북간 신뢰가 다 깨진 상태에서 기존 사업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리 없이 남북 간에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진지함을 찾아볼 수 없다.
 
외교무대에서 보인 모습들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동남아시아 순방 중 전용기 안에서 탑승 기자들과의 간담회 대신 평소 친분이 있던 CBS와 채널A 출입기자만 따로 불러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실은 "사적 대화"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사적 활동이고, 전용기가 사적 공간인가.
 
윤석열 대통령, ‘진지맨’부터 되시라
 
지난 9월 윤 대통령의 영국, 뉴욕(유엔) 등 해외 순방에서 나온 온갖 잡음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 방문의 최대 목적인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을 하지 않았다. 또 국제 사회의 가장 큰 외교무대인 유엔 총회에서 분단국 대통령인 윤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역대 한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하면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이 정치 초짜이고, 외교 문외한이라는 것을 다 알고도 국민은 그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진지함, 성실함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남북관계 관련해서 윤석열 정부가 집권 이후 줄곧 의지를 ‘과시’하는 사안이 하나 있다. 북한 방송·통신에 대한 선제적 개방 문제다. 통일부는 지난 달 발표한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 정책’에서 중점 추진과제 중 하나로 ‘방송·언론·통신 분야 상호개방 단계적 진행’을 꼽으면서 “우리가 먼저 개방과 소통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북한의 언론·출판·방송의 국내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탈북자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도 “일각에선 북한 방송을 개방하면 국민들이 북한 당국과 김정은의 선전 선동에 넘어가고 국가안보 위협을 우려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매우 높다. 더 이상 공산주의의 선전 선동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며 관련 토론회를 주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권 장관은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던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이미 홍콩 위성방송을 통해 북한 방송을 볼 수 있는데 북한 방송 개방을 추진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일반 TV로 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사진=뉴시스)
 
권영세 장관 앞장서고, 탈북자 출신 태영호 의원도 적극 찬성
 
이미 국력 차이를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남북간 체제경쟁은 끝났다. 몇 년 전에야 생중계, 그것도 재난 상황에 국한한 생중계를 시작한 북한 방송은 우리의 70, 80년대 수준이고, 활자매체들은 만연·화려체에 선동 일색이다.
 
미국 정치학계에 "닉슨만이 베이징에 갈 수 있었다"는 표현이 있다. 닉슨이 워낙 반공 매파로 유명했기 때문에 미국 내에 이념 갈등 없이 사회주의 중국을 방문해 마오저뚱을 만나고 이후 미중 수교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 매체 개방 문제를 꺼냈다면 나라가 양분됐을 게 분명하다. 더욱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국에서 이런 발언을 꺼냈다면 그 당사자는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본래가 정치인인 권영세 장관도 비판에 앞장서지 않았을까.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김대중-김일성 회담’이 아니라 애초 예정대로 1994년 ‘김영삼-김일성 회담’으로 열렸다면, 지금처럼 극심한 남남갈등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가 물꼬를 튼 만큼 자신감을 갖고 북한 방송통신 개방을 실현해내기 바란다. 그 문을 연다고 별다른 영향을 받을 만큼 우리가 만만한 사회가 아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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