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대한항공의 부정회계 의혹이 제기됩니다. 회사는 최근 9년간 항공기나 토지 구매 등이 포함된 유형자산 취득에 10조원 정도 썼다고 공시했으나 항공기 장부가는 600억원 증가에 그쳤습니다. 쏟아부은 돈이 어디로 증발했는지 의문입니다. 항공기 구매계약 관련 대한항공 전 임원에 대한 뇌물 의혹을 검찰이 수사 중이며 공시가와 실구매가 차이가 수조원대에 달한다는 의혹도 국회에서 제기된 터라 공시 정보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두관 민주당 의원실 및 업계 등에 따르면 김두관 의원은 작년 국감에서 대한항공의 항공기 반값구매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에어버스나 보잉 등으로부터 항공기를 구매한다고 공시한 표시가격(List price)보다 실구매가격은 절반 정도 저렴할 것이란 문제제기였습니다. 반값 할인받은 금액은 공시 정보에 표시되지 않아 대한항공이 어떻게 회계처리했는지, 혹은 비자금으로 탈취했는지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의원실은 대한항공이 2015년에 공시한 A321(에어버스 제조) 구매 표시가격이 대당 1억1490만달러였지만 2017년에 확인된 실제 시장가치(할인 적용)는 5250만달러에 불과했다고 추정했습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회계 공시는 최초 계약 당시엔 표시가격으로 투자금을 산정했으나 실 투자금은 시장가치를 적용했는지 알아보기 힘듭니다. 특히 대한항공이 매년 항공기를 새로 구매한다고 공시한 적도 많지만 최근 9년간 장부가는 제자리걸음을 해 공시정보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2014년부터 거의 매년 유형자산 취득에 1조원 넘게 쓰다가 코로나19가 발병한 2020년부터 투자금은 수천억원 단위로 줄었습니다. 9년간 쓴 총 유형자산 취득금액은 10조598억원이었습니다.
자산을 신규 취득한 만큼 그 장부가도 늘어야 하지만 항공기 장부가는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보통 부동산에도 많은 돈을 쓰지만 대한항공이 보유한 토지의 경우에도 9년간 장부가가 6000억여원 증가했습니다. 그러면 항공기에 투자금을 썼어야 했지만 항공기 장부가도 609억여원 증가에 그쳤습니다.
대한항공이 2015년 에어버스와 보잉 등으로부터 구매한다고 계약한 항공기 62대의 표시가격 총액은 77억1120만달러나 됩니다. 대한항공은 또 2019년에도 신규 항공기를 20대 구매한다며 63억900만달러의 표시가격 기준으로 신규 투자금을 7조4471억원(당시 환율 적용)공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항공기 자산 증가는 9년째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에어버스는 2019년 새로운 세금 규정 때문에 표시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항공사에 비행기를 판매해온 비밀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50% 할인된 가격입니다. 에어버스가 2018년에 비행기를 판매해 벌어들인 금액은 약 4600억유로로 2017년 판매한다고 밝힌 표시가격 9970억유로보다 50% 정도 낮습니다.
업계는 항공기 제조업체가 표시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이유에 대해 물가상승을 고려해서라고 봅니다. 항공기가 출시되기까지 최대 10년 전에 항공사는 구매하는데 가치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표시가격을 따로 책정한다는 것입니다. 즉, 10년 후 가치로 가격을 높게 책정하지만 실제로는 반값에 거래된다는 관행입니다. 에어버스와 보잉간 유로, 달러화 환율에 따른 화폐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는 의도도 섞여 있습니다. 제조 비행기의 성능이 예상보다 우수할 경우에도 대비해 미리 가격을 올려 두는 게 유리하다고 합니다. 항공사가 비행기를 여러대 사는 경우 할인을 많이 해주는 영업상의 전략도 통용됩니다. 이 때문에 에어버스와 경쟁하는 보잉 역시 반값 할인 정책을 써왔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그러면 대한항공 역시 반값할인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구매가를 공개하지 않으며 회계 정보의 투명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입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항공기 자산을 국제회계기준에 의하여 적절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본계정 대체를 포함한 항공기(기체), 엔진, 사용권자산 항공기"의 자산 변동내역을 감안해야 한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륙하는 대한항공 항공기. 사진=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