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KCC가 야심 차게 인수한 미국 모멘티브 사태가 '승자의 저주'로 치닫고 있습니다. 거액의 순손실과 영업권 손상이 발생했음에도, KCC는 자산가치 평가법 변경과 미실현 투자 수익을 동원해 장부상 실적을 부풀리는 '회계적 기교'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착시 현상'은 트러스톤자산운용 등 기관 투자가들의 비판과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직면했습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KCC가 글로벌 실리콘 시장 도약을 위해 인수했던 모멘티브(MOM Holding Company)의 성적표는 처참합니다. 2025년 기준 모멘티브는 51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단순한 실적 부진을 넘어 인수 자산 가치가 훼손됐습니다. KCC는 작년 모멘티브 실리콘 사업부(Silicone-FB)의 사용가치가 장부금액 밑으로 하락함에 따라 1390억원의 영업권 손상차손을 인식했습니다. 여기에 기술력 등 기타 무형자산에서도 200억원의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경영진이 승인한 향후 5년간의 현금흐름 추정치가 하락했다는 점은 모멘티브 고액 인수에 따른 투자 실패를 회사가 부분적으로 공식 인정한 셈입니다.
본업과 투자 자산에서의 상처가 깊어지자 KCC가 꺼내 든 카드는 '회계 정책 변경'이었습니다. KCC는 2025년 토지 등에 대한 평가법을 원가모형에서 재평가모형으로 변경했습니다.
그 결과 약 8971억원의 재평가잉여금이 발생했습니다. 이 금액은 자본 항목인 '기타포괄손익누계액'에 즉시 쌓였습니다. 현금 유입은 한 푼도 없었지만, 장부상 자본 총계가 급증하며 재무 구조가 좋아 보이는 착시 효과를 거뒀습니다.
KCC가 기록한 작년 1조5384억원의 당기순이익 역시 주주 이익인 배당가능 재원으로 직결되지 않습니다. 이익의 핵심은 삼성물산 등 KCC가 보유한 상장 주식의 가치가 폭등하며 발생한 2조6417억원의 금융자산 평가이익입니다. 2024년 3421억원 수준이었던 평가이익이 1년 만에 약 8배 폭증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는 주식을 팔지 않고 보유만 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장부상 이익'일 뿐입니다. 실제로 당기 중 주식을 매각해 주주환원 재원을 마련한 처분이익은 128억원에 불과했습니다(평가익 중 0.5%). 일반적으로 장기 투자하며 보유하는 주식은 기타포괄손익에 반영하지만, KCC는 14년째 보유하면서도 당기손익에 추가해 왔습니다.
이는 과거 삼성물산 합병 당시 자사주 처분에 따른 주식 보유분입니다. 사실상 경영권 방어 우호주로 인식됐으며, 실제 차익실현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정은 규제 입법을 통해 이처럼 자사주를 활용한 우호주 형성을 차단했습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의 유동화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트러스톤 측은 삼성물산 주식을 시장에 매각하거나 이를 담보로 교환사채(EB)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통해 고금리 차입금을 상환해 재무구조를 실질적으로 개선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장부에만 존재하는 미실현 수익을 수성하기보다, 실제 현금화를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라는 압박입니다.
압박이 거세지자 KCC는 주주총회 직전 자사주 약 117만4000주(총 발행주식의 13.2%)를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트러스톤이 요구한 123만 주 소각 제안과 유사한 규모입니다.
그러나 소각 시점을 2027년 9월 내 분할 소각으로 설정하면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지연 전술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시장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권고적 주주제안 정관 신설 등 주주들의 경영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방어용 공시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KCC 관계자는 “모멘티브 당기순손실은 그간 중국발 공급과잉 속 실리콘 가격구조 붕괴로 저수익성 제품군 및 사업부에 대한 실적하락과 평가손상이 있었던 것”이라며 “실리콘 업계가 공통으로 직면한 업황 문제인데, 공장운영 효율화와 관리비용을 통한 원가 개선과 품질 강화 등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