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부터 '자부심 뿜뿜'이 느껴지는 '대한민국 검사였던 양반'이 뒤늦게 할 말이 많나 봅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14년이 흐른 2023년 3월에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명목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습니다.
공소시효, 즉 자신이 잡혀갈 법적 근거와 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이제는 이 세상 분이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시 소환했습니다. 비장한 책 제목과 달리 내용의 핵심은 '나는 논두렁시계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로 요약됩니다. 국정원과 언론이 확대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쪽준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억울했던 사람이 정작 소명기회가 왔을때는 왜 미국으로 서둘러 갔는지 궁금합니다. 책에서 이인규 전 부장은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던 2017년 5월 10일 아침 출근 직후, 대표변호사가 사무실로 찾아와 "세상이 바뀌었으니 로펌을 나가달라"고 했다고 썼습니다. “문재인 캠프 핵심 인사에게 들었는데, 당신은 꼭 손을 보겠다고 합니다. 같이 죽자는 말이오?”라고 대표변호사가 말했다고 하네요.
법무법인 '바른'에서 '나는 대한민국 변호사다'라는 책을 발간해 이 부분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논두렁시계' 진상조사 착수에 곧장 '미국행'
그런데 이 시기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원 개혁위가 소위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시점입니다. 이인규 전 부장은 그해 8월 미국으로 출국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귀국은 2019년입니다. 잠잠해지기 충분한 2년간 미국에 머물렀네요.
이후 검사출신 대통령이 취임하고, 공소시효도 소멸돼 이제는 붙잡아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니, '진실'을 남긴다는 이유로 책을 출판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밟으며 세상에 재등장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수사도 끄집어 냅니다. 이번엔 '논두렁'이 아니라 '쪽'과 '통방'을 갖고 왔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을 당시 이런 말을 했다고 썼습니다.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박 회장! 고생이 많습니다.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 가면 통방합시다.”
또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 '쪽주기'
듣기 나름이겠습니다만, 문장만 읽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없이 비겁한 '잡범'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은 저만의 감정일까요. 진실을 말한다면서 다시 한번 전임 대통령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제 착각일까요.
'검사 부심'이 넘쳐나는 책 제목과는 달리 검사윤리강령은 '개나 줘버린' 모습입니다. 검사는 수사사항, 사건 관계인의 개인 정보 기타 직무상 파악한 사실에 대해 비밀을 유지해야 하며, 전화, 팩스 또는 전자우편 그리고 기타 통신수단을 이용할 때에는 직무상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유의한다(검사윤리강령 제 22조)
대한민국 검사가 지금은 아니라서 그럴까요. 대한민국 검사였기에 법기술을 잘 꿰뚫고 있어 현 시점에서는 검사윤리강령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겠죠.
이인규 전 부장의 책을 보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 있네요. "이 부장! 그만합시다. 쪽팔리잖아"
오승주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