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최근 미국에서 고강도 통화 긴축에 따른 상업용 부동산 리스크가 금융시장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 같은 분위기가 국내로 고스란히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금리 결정 흐름에 후행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한국은행은 앞으로도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투자 특성상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 강한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금리 변동에 더 민감한 경향을 보입니다. 게다가 국내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미국 시장과의 직접적 비교는 어렵지만 금리 인상 흐름이 지속될 경우 금융위기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침체…금융위기 가속화 조짐
30일 주요 외신 및 금융 업계에 따르면 미국 연준이 최근 1년간 높은 수준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자,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공실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이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달 26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내년까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현재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대출 규모는 5조6000억 달러(7282조원)인데, 이중 향후 3년 동안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가 1조5000억 달러(1952조원)에 달한다는 것이 WSJ 관측입니다.
또 지난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연준의 0.25%포인트 정책금리 인상으로 긴축 기조가 이어지면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긴장 상태가 심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등 은행들의 위기와 기업들의 추가 대출 감소도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대부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금리가 제로에 가까울 때 시행된 대출들이죠.
하지만 코로나19 시기를 겪은 현시점은 재택근무의 보편화로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가 떨어지고,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대출은 어려워진 상태입니다.
게다가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 시장의 70% 정도는 중소은행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재정 건전성 제고를 이유로 대출을 줄인다면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지면서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미국과 흐름 유사…레버리지 효과 기대 어려워
문제는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 미국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역시 고금리 분위기와 주택 시장의 침체 속에 상업용 부동산의 투자 가치가 점차 떨어지며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은행(시중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잔액은 184조7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년(171조3000억원) 대비 7.8% 증가한 수치입니다.
한편 상업용 부동산의 임대 가격은 떨어지고 공실률은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중대형 상가가 0.33%, 소규모 상가가 0.52% 각각 하락했습니다. 같은 기간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 13.2%, 소규모 상가가 6.9%로 전년 대비 각각 0.1%포인트, 0.5%포인트 올랐습니다.
이 가운데 은행을 제외한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확대되는 점도 미국과 닮아 있습니다. 한은에 따르면 비은행권 금융사의 부동산 PF 관련 익스포저는 작년 9월 말 기준 대출 91조2000억원, 채무보증 24조3000억원 등 총 115조6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2017년 말에 비해 2.6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은행권의 경우 아직 안정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만 비은행권의 경우 익스포저가 상대적으로 커 부동산 경기 침체 시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 한은 입장입니다. 실제로 상업용 부동산 투자자들의 경우 레버리지 효과 극대화를 위한 대출 의존도가 높고 비은행권을 노크하는 경향이 짙은 점을 감안하면, 비은행권의 익스포저 확대는 분명한 위협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금리 장기화 시 금융위기 뇌관 될 수도
전문가들 역시 이번 사안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병기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에 비해 상업용 부동산 비중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며 "일부 지역은 과잉 공급이 우려될 정도다. 신도시나 택지지구 등 상가의 경우 공실이 많은 것이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상가 간 과다 경쟁이 발생하고 임대료 상승으로 자영업자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가운데, 금리 인상, 가스·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상가 자체의 시장 전망도 어두운 분위기"라며 "특히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 있어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절대적인데, 이들의 고전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모로 미국의 흐름과 닮은 점이 많다"고 우려했습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미국과의 직접 비교가 쉽진 않지만 국내 상업용 부동산의 시장 흐름이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겨우내 상가 시장의 극침체기에 대출 금리가 7~8%대인 상업용 부동산 매물이 쏟아진 바 있고, 최근 5~6%대까지 줄긴 했지만 여전히 금융 비용 부담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선 대표는 "상업용 부동산의 임대 수익률이 금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레버리지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셈"이라며 "아직까지는 한은이 금리 인상을 상당히 늦추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어느 정도 버티고 있지만, 만약 여기서 통화 긴축 흐름이 강화될 경우 상업용 부동산이 시장 불안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 시민이 서울 도심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