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출범 1주년을 맞은 윤석열정부를 바라보는 중소벤처기업계와 소상공인의 시선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큽니다. 올 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근로시간 개편은 '69시간제'로 불리며 잡음이 이어지고 있고 경기 침체에 따른 소상공인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반기 도입을 앞둔 납품대금연동제는 현 정부의 주요 성과로도 꼽히지만 여기에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묻어납니다.
저항 없는 정책은 없다지만, 정부가 상반기에 발표한 정책 중 저항이 가장 큰 건 근로시간 개편일 겁니다. 지난 3월 정부는 일주일에 최대 69시간 일하는 대신 일이 적을 때는 쉬게 한다며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냈습니다. 주 52시간제 틀 안에서 특정 주에 연장 근로를 더하면 다른 주는 할 수 없게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과로에 대한 우려와 휴가 사용 눈치 문화 등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거세자, 정부는 제도 정비에 들어갔습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지난달 4일 여의도 중기중앙회관에서 근로시간 유연화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중앙회)
근로시간 개편안 잡음…유연화 vs. 과로 우려
그 와중에 중소기업계는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인력이 부족한데 성수기 물량이나 급작스런 주문에 대처하려면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15개 단체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자 동의 없는 연장 근로가 기우라고 했습니다. 개편안에 따른 연장 근로는 노사 합의와 개별 근로자 동의가 필요한데, 중소기업 근로자의 약 20%가 1년 안에 이직하는 상황에서 동의 없는 연장근로는 어렵다는 겁니다.
내가 쉬면 대신 일 할 사람이 없는 현실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중소기업 단체들은 인력난 해소로 근로자가 연차 휴가를 눈치 보지 않고 쓰는 문화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부는 재검토로 한 발 물러섰지만 일단은 근로시간 개편을 이어간다는 방침입니다. 고용노동부는 8일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과학적으로 설계하고 투명하게 추진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소상공인 '온전한 손실 보상' 대신 '경쟁력 강화'에 무게추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면 냉방으로 전기료 부담이 클 텐데요. 코로나19에 신음해온 소상공인들은 고물가에 에너지 비용 부담이 겹쳤다며 아우성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1호 공약은 '소상공인에 대한 정당하고 온전한 손실 보상'이었습니다. 국민의힘은 대선 당시 50조원 이상 재정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정부 2차 추경 예산은 29조원입니다. 이에 정부가 온전한 손실보상 약속을 어겼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중소벤처기업부는 2020~2021년 소상공인 손실 추정액 54조원에서 그간 재난지원금으로 지급한 36조원을 제외한 18조원보다 규모가 크다고 반박했습니다.
올해 정부는 코로나19 손실 보상보다 경쟁력 강화에 무게를 뒀습니다. 정부는 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 발표 자료에서 코로나 확산세 안정화를 들어 '코로나19로 한시 확대된 소상공인 손실보상, 코로나19 백신 도입 비용 등은 과감히 축소·종료하고 소상공인 재기 등에 재투자'한다고 적시했습니다.
현재 중기부는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와 재기 지원 등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소상공인들은 경기침체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치솟는 에너지 비용이 부담입니다. 정부 방침은 전기·가스 요금 분할 납부(7월과 12월)입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에너지 바우처와 요금 할인 법제화, 고효율 에너지 제품 교체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에너지 취약 계층에 소상공인이 포함되면 나가는 비용이 줄어 판매 물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는데,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청사 전경.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첫 발 뗀 납품대금연동제, 실효성엔 의문
하반기 시행을 앞둔 제도 안착 여부도 관심을 모읍니다. 10월 시행되는 납품대금연동제가 대표적입니다. 납품대금연동제는 위탁기업이 수탁기업에 물품 등의 제조·공사·가공·수리 등을 위탁할 때 납품대금 연동에 관한 사항을 약정서에 적어 수탁기업에 발급하고, 그 내용에 따라 납품대금을 조정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원재료 가격이 변하면 납품대금을 조정할 수 있으니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거래 문화 조성의 첫 발을 뗀 셈입니다.
그런데 중소기업계에선 전기료가 오르는 상황에서 뿌리산업 관련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전기료가 뿌리산업 제조원가의 30%를 차지한다"며 "지금 법은 연동제 대상이 주요 원재료로 돼 있고 경비성 원재료인 전기료는 포함되지 않아, 연동 범위 확대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위탁사와 수탁사가 합의하면 납품대금 연동을 안 해도 되지만, 갑을 관계에서 강요가 있을 경우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대기업에 합의 강요 관련 입증 책임이 법에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단건 계약 기간이 5년, 10년으로 길어질 경우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 등도 과제로 꼽힙니다.
'벤처 숙원' 복수의결권 풀렸지만 모태펀드는 '짠물'
자금줄이 마른 스타트업도 정부 지원 정책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부는 혁신 벤처·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상·하반기로 나눠 시행합니다. 성장 단계별로 초기 6조1000억원, 중기 1조9000억원, 후기 4000억원을 지원합니다. 비상장 벤처 복수의결권은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만 스타트업계가 요청해온 모태펀드 신규 출자 증액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또 후기로 갈수록 투자 받기 어려운데, 성장 단계별 지원 규모가 적어져 불만입니다.
올해 중기부 모태펀드 예산은 3135억원으로 지난해 예산 5200억원에서 대폭 줄었습니다. 정부 기조는 투자 시장의 민간 중심 전환과 다양한 인센티브 마련입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안 되면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초기와 달리, 시리즈 B, C로 나아갈수록 필요한 자금 규모가 커지고 투자 결정도 중대해진다"며 "불경기에 정부가 모태펀드 규모를 줄이면 오히려 시장에선 관망해 투자 받기가 더욱 힘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