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추진 중인 가운데 비금융업의 지급결제 허용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삼성, 현대차, 한화 등 비지주회사체제 기업집단이 보유한 카드사, 보험사, 증권사 등에 지급결제가 허용되는 식입니다. 이를 두고 사실상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로 보는 시각이 있으며, 이는 금융권 경쟁촉진, 소비자 편익 증대 등 목적의 금산분리 규제완화 논리와 충돌하고 있습니다. 만일 허용될 경우 금산분리 규제 아래 금융사를 매각하고 기업형벤처투자사(CVC)보유만 가능해진 지주회사 집단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져 논란이 예상됩니다.
비금융권 지급결제 허용안 쟁점화
30일 금융위원회 및 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정책 일환으로 지난 2월22일부터 TF인 실무작업반을 가동해왔습니다. 실무작업반은 오는 6월말까지 관련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현재까지 논의된 방안 중에 가장 큰 쟁점은 은행과 비은행권간 경쟁 촉진을 위해 카드사의 종합지급결제 허용, 증권사의 법인 대상 지급결제 허용, 보험사의 지급결제 겸영 허용안입니다. 증권사의 경우 개인자금 지급결제와 기업대출(자기자본 3조원 등 일정요건 갖춘 증권사) 허용에 이어 법인자금 지급결제까지 허용할 경우 사실상 증권사가 은행업을 영위하게 되나 금산분리 정책 등 은행업권의 각종 규제는 적용받지 않게 된다는 문제점이 지적됩니다.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들이 대기업 계열 증권사로 결제계좌를 집중 시 등 증권사로 대규모 자금이 집중돼 금산분리 정책의 실효성이 저하되고 해당 증권사가 재벌 사금고화 되는 부작용 발생 우려도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 제도 찬성 쪽에선 지급결제 허용을 은행업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보입니다. 저축은행, 신협 등 타 금융기관에서도 이미 개인과 법인 구분 없이 지급결제 업무를 영위하고 있다는 논리입니다. 또 증권사의 자금이체는 별도 예치된 예탁금으로 한정돼 대기업 지원이 불가능하며, 이미 이해관계자와의 거래제한 규정(자본시장법)이 마련돼 있고 현재도 은행연계망을 통한 법인 지급결제서비스를 제공하나 계열사를 동원한 대규모 계좌개설은 없다는 의견도 제기합니다.
금융투자협회는 “기업에 대한 증권사의 모험자본 투자, 자금지원 등이 확대되는 가운데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허용 시 기업이 증권종합계좌에서 여유자금 운용 및 거래대금이나 운영자금 입출금 등 종합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증권계좌 활용성 확대로 편익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험연구원도 “보험업의 지급결제업무 허용은 ‘리스크 관리’라는 보험업 특성을 살린 결제계좌 기반 신사업 구현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 효용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반대 쪽에선 무엇보다 “대기업계열내 증권사가 법인지급결제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은행업을 영위하는 것”이라며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금지하고 있는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비금산결합집단과 형평성 문제도
실무반이 다루는 방안 중에는 신규은행 추가인가도 있습니다. 스몰라이센스, 소규모특화은행 도입, 인터넷전문은행 등 추가 인가가 그 내용입니다. 특히 요건을 갖춰 신청할 경우 증권사나 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사나 지주에 대해 인터넷전문은행 인가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다뤄집니다.
이같은 규제 완화 방안은 모두 기업집단 계열 내 증권사나 보험사 등을 두고 있는 삼성, 현대차, 한화, 태광 등 금산결합집단에 대한 특혜 논란과 함께 금융사를 보유할 수 없는 지주회사체제 집단과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합니다. 만일 금산결합집단에 허용될 경우 지주회사집단 역시 제도 허용을 요구할 수 있어 금산분리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비슷한 논리로 은행권은 비이자수익확대를 위해 벤처투자 확대, 신탁업 혁신, 투자 자문업 활성화 등 비금융업 진출을 확대하려하는데 산업자본도 거꾸로 금융업 진출을 추가 허용해야 형평성에 맞다는 주장이 존재합니다.
기존에 지주회사 집단에 허용된 CVC 역시 형평성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신규 CVC를 설립한 GS나 효성 등에 비해 이미 CVC를 갖고 있던 삼성, LG 등 다른 그룹들과 규제 잣대가 불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삼성벤처투자의 경우 삼성중공업, 삼성전기, 삼성전자 등 다수 계열사가 경영권 지분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지주회사 체제 내 CVC는 지주회사의 100% 지분 자회사여야 한다는 규제를 적용받습니다. 코오롱, CJ 등 아예 지주회사 체제 밖에 CVC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엔 총수일가가 지분 참여하는 등 다양한 지분 구성도 보입니다.
지주회사 내 CVC도 태생부터 논란이 계속됩니다. GS벤처스가 결성한 지에스어쌤블신기술투자조합엔 GS, GS에너지, GS리테일, GS건설, GSEPS, GS글로벌 등 다수 계열사들이 출자했습니다. 효성벤처스가 결성한 씨브이씨스케일업신기술투자조합에도 효성, 효성중공업, 효성티앤시, 효성첨단소재, 효성화학 등이 참여했습니다. 본래 대기업의 유휴자본을 활용하기 위한 제도 목적에 부합하지만 사익편취규제 적용 대상인 지주회사 100% 자회사에 계열사들의 자금이 동원되는 형태가 부각됩니다.
시장에선 이를 두고 새로운 유형의 일감몰아주기로 보는 비판적 시각이 있습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 CVC 운영과 관련해 지배주주 일가의 사익편취를 방지하기 위해 소속 집단 지배주주 일가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한 CVC의 투자와 지배주주 일가로의 CVC 스타트업 보유 지분 매각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열사들이 위험을 부담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성공 시 지배주주 일가 지분이 높은 계열사가 취득할 가능성 등 한계도 노출됩니다.
이와 관련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CVC가 100% 지주회사 자회사이나 펀드에 계열사들이 출자 가능해 사실상 지주회사 출자규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지주회사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 등에 대한 출자규제를 적용받고 있는데 우회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복수의결권 주식이 허용된 만큼 CVC와 더불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꾸준히 나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