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햇반, 비비고 등 제품 납품단가를 두고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쿠팡과 CJ제일제당의 갈등이 장기화하며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사태는 초반 단계만 해도 양측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통상적인 갈등 정도로만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6개월 이상 장기 협상에 돌입하면서 양사는 비방을 통한 경쟁 제품의 약진을 강조하거나 또 다른 유통 채널과의 협업 체계를 강화하는 등, 갈등이 식품·유통 업계 간 가격 결정 주도권 싸움으로 변화하는 추세입니다.
업계는 이번 싸움의 결과에 따라 식품·유통 업계의 가격 결정권 향방이 갈릴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은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소비자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쿠팡 공개 저격…CJ제일제당 유통 채널 다변화
13일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휴일인 지난 11일 CJ제일제당을 사실상 공개 저격하는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쿠팡은 올해 1~5월 식품 판매 추이를 분석한 결과, 즉석밥 부문에서 중견기업 제품은 최고 50배, 중소기업 제품은 최고 100배 성장했다고 밝혔는데요. 아울러 쿠팡은 중소·중견기업의 즉석국, 냉동만두 등 판매 성장도 있었다고 부연했습니다.
쿠팡 측은 즉석밥 부문 내용과 관련해 "한 업체는 쿠팡 내 판매량이 독과점 대기업 식품사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독과점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앞세운 대기업이 사라지면서 중소·중견기업들의 가성비 경쟁이 치열해져 소비자 유입과 구매가 늘어난 것"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보도자료에 업체명을 명시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쿠팡이 CJ제일제당을 저격했다 봐도 무방합니다. 그만큼 쿠팡이 CJ제일제당과 겪는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기 어렵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CJ제일제당도 '반(反) 쿠팡연대' 전선 형성에 나선 상황입니다. 신세계그룹이 '쿠팡 와우' 멤버십에 대항하기 위해 통합 멤버십인 '신세계 유니버스'를 론칭한 이달 8일, CJ제일제당은 신세계그룹 유통 3사(이마트·SSG닷컴·G마켓)와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으로 상품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협업은 △데이터 기반 혁신 제품 상품화 △유통 및 마케팅 등 두 영역에서 진행되는데요. CJ제일제당은 제품과 브랜드 기획·제조·마케팅 등에서, 신세계 유통 3사는 데이터·MD·플랫폼 기획과 운영에서 핵심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시너지가 기대되는 상황입니다.
이는 식품과 유통 부문에서 최고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끼리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상품,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자는 취지인데요.
올해 3월 네이버의 '도착보장 전문관'에 입점한 데 이어 최근 11번가와 함께 '슈팅배송 연합 캠페인'을 전개한 CJ제일제당의 행보를 볼 때, 이번 신세계그룹과의 협업 역시 전형적인 반 쿠팡연대 전선 확보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애꿎은 기싸움에 소비자만 피해
CJ제일제당과 쿠팡은 지난해 11월부터 햇반, 비비고 등 제품 납품단가를 두고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CJ제일제당은 당시 쿠팡이 제시한 납품가 인상안을 수용하지 않았고, 이에 쿠팡은 CJ제일제당의 주요 제품 발주를 멈췄는데요. 이처럼 유통·식품 업계 간 기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종종 있지만, 이렇게 반년 넘게 대립각이 이어지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불편만 가중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햇반은 국내 즉석밥 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을 만큼 고객 충성도가 매우 높은 브랜드입니다. 그만큼 오로지 햇반만을 고집하는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때문에 쿠팡에서 햇반, 스팸 등 CJ제일제당 주요 상품이 일제히 빠진 상황에,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회원들은 CJ제일제당 제품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선호하지 않는 이커머스 채널을 이용하거나 쿠팡에서 원하지 않는 상품을 구매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CJ제일제당과 쿠팡의 싸움이 초반에는 단순히 실익을 따지는 단계였는데 현재는 양측 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 각 사가 서로 보완하고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이 많기 때문에 쉽게 협상은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며 "기업들의 사정이야 어쨌든 소비자는 원치 않는 제품이나 유통 채널을 이용해야 한다. 이 사태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소비자가 가장 큰 피해자인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할인마트에 CJ제일제당의 '햇반' 제품들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