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우리 사회에서 눈에 띄는 위기는 단연 해킹이다. 지난해 봄 SK텔레콤의 '유심 대란'으로 촉발된 해킹 이슈는 이후 빠르게 확산하며 연말 쿠팡 사태로 정점을 찍었고, 이에 따른 후폭풍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연이은 해킹 논란 속에 정보 보안 강국이라는 허울도 한 꺼풀 벗겨지고 기업들의 신뢰도가 낮아져 아쉬움이 크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해킹 이슈의 중심에 놓였던 통신 기업들과 쿠팡의 상반된 사과 자세다.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범주에 묶여 있는 기업들이라지만, 통신사들과 쿠팡의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SK텔레콤이나 KT 등 통신업계의 사과는 전통적인 대기업의 공식을 따랐다. 문제 발생 후 원인 분석, 내부 검토, 최고 사령탑이 나선 공식 입장 발표까지 단계적이면서도 신중한 진행 과정을 거친 점이 눈에 띈다. 해킹으로 인한 기업 내부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부분과는 별개로, 기업의 사과 태도 자체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울러 이들 기업은 고객이 겪은 실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도 내놨다. 고객들이 각자의 상황, 호불호에 따라 볼멘소리를 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들 보상 콘텐츠에 대해 대대적으로 비판하는 사례 역시 흔치는 않다. 이유야 어쨌든 통신 업체들은 정형화된 매뉴얼에 따라 사과 절차를 거쳤다.
반면 쿠팡의 사과 태도는 모든 면에서 통념과는 사뭇 달랐다. 대규모 정보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 책임의 선봉에 서야 할 최고 수장은 전면에 나서지조차 않을 만큼 커뮤니케이션은 턱없이 짧았고 법적 리스크 최소화에만 초점을 맞췄다. 쿠팡이 제시한 보상안도 현금이나 캐시백 등 방안들이 아니라, 자사 플랫폼 내 소비를 유도하는 쿠폰형 보상이라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소비자들이 감정적으로 격분하기 쉬운 수순들만 밟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과 과정에서 고객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했는지를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 같은 대규모 유출이 발생했다는 것은, 보안 시스템이 오랜 기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쿠팡은 정보 유출의 정확한 범위, 해킹 공격 방식,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안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거의 없이, "큰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책임을 추상화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쿠팡이 스스로를 유통사가 아닌 ICT 기업으로 규정해온 점을 감안하면, 해킹과 정보 보안이라는 문제 앞에서만큼은 이에 걸맞은 해명과 사과에 나서야 하는 게 맞다.
사실 통신사들이나 쿠팡 모두 해킹 문제는 기술 개선뿐만 아니라, 신뢰 제고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 진정한 ICT 기업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해킹을 위험 관리의 실패가 아닌 신뢰를 재구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 역시 모든 기업들에게 통용된다. 다만 통신사들과 쿠팡의 차이점은 사과의 프로세스를 아는지다. 쿠팡이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제대로 드러내는 절차조차 거치지 않는다면, 이 같은 문제 해결 과정은 더욱 길어질지도 모른다.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