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일 마라톤 논의 '허탈'…"초기부터 기울어진 최저임금"

"최임금위원회, 노동계 목소리 충분히 반영 안 돼"
'캐스팅보트' 공익위원, 결국 올해도 최저임금 결정
"실질임금 감소, 부의 불균형 분배 갈수록 심화할 것"

입력 : 2023-07-20 오전 5:00:00
[뉴스토마토 조용훈·주혜린·김유진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 났지만, 올해도 애초부터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탓에 노동계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에 그치면서 사실상의 실질임금 감소와 다름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19일 <뉴스토마토>가 내년도 최저임금 결과에 대한 노동계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 노동계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로자위원 1명이 공석으로 만드는 등 정권 초기부터 최저임금 인상을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무력화시켰다"며 "정부의 태도 자체가 과도하게 사용자 측에 기울어져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곧 업종별로 단체협상도 진행될 텐데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그널들이 같이 연동돼 있기 때문에 많이 우려된다"고 언급했습니다.
 
근로자위원 중 한 명인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상임부위원장은 지난달 '품위 훼손'을 이유로 지난달 고용부로부터 해촉된 바 있습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5% 오른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사진은 19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 모습.(사진=뉴시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정치'만 존재했다"며 "정부의 목표치가 있고 거기에 맞춰 나가는 과정으로만 협상이 진행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갈등 조정, 논리 싸움 등을 통해 조정해 나가는 과정 없이 각자 입장대로만 가다가 결국 정부 입김대로 결정이 되는 구조"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최임위는 근로자위원 8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6명으로 이뤄져 있는데, 투표 결과는 공익위원 대부분이 사용자위원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위촉하는 공익위원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특히 올해 최임위 심의 과정 중에는 일부 언론을 통해 '내년 최저임금이 9800원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정부 고위 인사의 발언이 보도돼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에 노동자위원들은 정부가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드러났다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는 "오늘 9920원 조정안을 제안하면서 정부 고위 관계자 가이드라인 이야기는 정리됐다고 본다"며 "보도와 달리 9920원을 조정안으로 제시했고, 민주노총이 조정안을 받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권순원 교수는 "지금까지 이만큼 합의에 근접한 적은 없었다"며 "이번에는 합의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막판에 성사되지 못하고 일부 불수용으로 무산된 것에 대해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날 공익위원들은 10차 수정안에서 노사 격차가 180원(노동계 1만20원·경영계 9840원)까지 좁혀지자, 합의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에 올해보다 3.12% 인상된 9920원을 노사 양측에 조정안으로 제시했습니다.
 
다만 사용자위원 9명과 공익위원 9명,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은 찬성했지만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반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와 함께 내년도 최저임금이 소폭 인상됨에 따라 노동자 실질임금이 더욱 뒷걸음질 칠 거란 평가도 나옵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4분기 연속 실질임금이 하락했다"며 "자영업자들이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상 자영업자들 들먹이며 낮은 임금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성희 고려대 교수는 "저임금 노동자 임금은 마이너스가 되고 부의 불균등한 분배는 더 심해질 것"이라며 "노동자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부의 분배가 역진적으로 흘러간다"고 우려했습니다.
 
실질임금 하락에 따른 소비위축 우려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는 "주머니가 채워져야 소비가 활성화될 텐데, 거시경제 측면에서도 악영향 끼칠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취약계층이나 저소득계층에 대해 사회보장제도 논의도 같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습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결정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사실상의 실질임금이 감소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사진=뉴시스)
 
세종=조용훈·주혜린·김유진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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