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에 주민 갈등…‘찌는 쪽방촌’

생필품 지원하는 서울시 ‘온기창고’ 개소
동자동 정비사업 놓고 대책위-쪽방주민 갈등

입력 : 2023-07-20 오후 5:33:54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정부가 강제 수용한 공공개발 전면 철회하라” “공공주택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기만이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을 위해 생필품을 지원하는 서울시 ‘온기창고’ 개소식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찌는 폭염 속에서도 동자동 정비사업을 놓고 갈등을 벌였습니다.
 
둘로 나뉜 동자동 
 
한쪽에서 동자동 주민 대책위원회는 민간개발을, 다른 쪽에서 쪽방촌 주민들은 공공개발을 외치며 양편으로 갈라섰습니다.
 
대책위는 동자동 일대를 민간이 개발할 수 있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대책위 주민은 “헌법상 재산권을 보장하는 건 기본”이라며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공공개발을 강제하는 건 사유재산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열린 서울시 동행스토어 ‘온기창고’ 개소식에서 지역주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사진=안창현 기자)
 
정부는 2021년 2월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공공개발 방식의 동자동 정비사업을 발표했습니다. 쪽방촌 일대 부지를 개발해 1000여명이 넘는 쪽방촌 주민들을 재정착시키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2년이 넘도록 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 공공주택지구 지정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온기창고 개소식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쪽방생활만 면하게 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잘 알고 있다”며 “이미 동자동 정비사업을 공공개발로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토부와 협의하고 있고 그 방향에서 속도감 있게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곳 쪽방촌에 18년을 거주했다는 윤모씨(62)는 “공공개발을 원하는 건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이웃들과 헤어지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라며 “소유주 분들의 이해가 필요한데 그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시에서 지원하는 에어컨 설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소유주가 에어컨을 달아도 된다고 허락해줘야 설치할 수 있다”며 “워낙 낡은 건물이라 겨울에는 수도가 동파돼 계단이 어는데 건물 관리가 잘 안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여름철 폭염 어쩌나
 
동자동 쪽방촌은 지대가 높은 편이라 다행히 이번 폭우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여름철에는 폭염이 문제입니다. 대부분 쪽방촌 주민들은 선풍기와 부채로 열기를 이겨내야 합니다.
 
골목길 앞 쪽방에서 지내는 최모씨(69)는 “여름에 남자들은 옷 벗고 문 열어놓고 견디지만,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며 “화장실도 대부분 공용이라 ‘무더위 쉼터’ 같은 곳에라도 가지 않으면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한편, 이날 개소식을 열고 8월부터 운영을 시작하는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편리하게 생필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기존에 생필품을 지원 받기 위해서는 물품을 배분하는 날 주민들이 일찍부터 긴 줄을 서야 했는데, ‘온기창고’는 매장에 생필품을 진열해 놓고 쪽방주민들이 배정받은 적립금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가져가는 방식입니다.
 
서울시는 동자동 외에도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9월초에 온기창고 2호점이 개소한다는 계획입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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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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