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살갗이 타들어갈 정도로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던 17일 정오. 판교역 광장에 가수 김범수의 노래가 울려퍼졌습니다. '보고싶다', '나타나', '제발' 등 김범수의 히트곡들이 연달아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는데요. 누군가를 향한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선곡이었습니다.
이 노래들은 약 2주 전부터 판교역 광장에서 자주 들렸다고 합니다. 한 사람 만을 향한 노래, 그 주인공은 바로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입니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싶다', '크루들 앞에도 나타나', '제발 초심으로 다시 돌아오길 바랄게' 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카카오(035720) 노조 크루유니언은 김 센터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보름 간의 1인 시위도 진행했는데요, 피케팅을 마치는 이날에는 300여명의 카카오 크루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지난달 26일 첫 번째 단체 행동에 나선 지 3주만인데요. 이번에는 처음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카카오 노조 크루유니언은 17일 두 번째 단체 행동 '크루들의 행진'을 진행했다. (사진=김진양 기자)
카카오 사옥 '아지트'가 있는 판교역 광장에서 엑스엘게임즈가 입주한 네오위즈 빌딩,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있는 H스퀘어까지 약 1.5㎞를 행진하는 투쟁에 카카오 크루들은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경영진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폭염도 막지 못했습니다.
서승욱 크루유니언 지회장은 "노동자들은 계열사 이동으로, 이직으로, 희망퇴직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경영진들은 사과 한 마디도 없이 고용이 보장되고 있다"고 크루들이 처한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그는 "경영진의 보상이 많은 것을 문제 삼는 것도 아니고 경영진은 전부 노동자의 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크루들은 원인도 모른 채 실패의 굴레를 쓰고 회사를 떠나거나 업무가 없어지거나 방치되고 있다"고 경영진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경영진의 탐욕과 불통, 일방적 리더십을 부수겠다는 퍼포먼스와 함께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ICT 기업들이 밀집한 판교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웠던 대규모 행진에 점심 식사를 위해 거리로 나온 다른 직장인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중간 경유지인 네오위즈 사옥 인근에 도착했을 때에는 행진에는 참여하지 못한 엑스엘게임즈 직원들이 나와 응원을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30여분의 행진 끝에 종착지인 H스퀘어 앞에 도착한 크루들은 커피차에서 음료 한 잔 씩을 받아들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지난 집회와 마찬가지로 카카오 노조의 요구는 간결했습니다. 책임과 사과. 기탄 없는 소통을 원했지만 대답없는 메아리에 그치는 상황을 노조는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오치문 크루유니언 수석부지회장은 "1차 집회 이후 들려온 소식은 김범수 센터장이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을 맡는다는 것과 '브라이언 펠로우'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며 "회사는 안으로 곪아터지고 있는데 외부 이미지만 신경쓰고 있는 모습에 참담함을 감출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노조는 김 센터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응답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습니다. 항의 서한을 전달했던 지난 집회와 달리 이번에는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에 경영 감사를 요청하는 공문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단체 협약을 통해서도 사측의 대답을 기다린다는 계획입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