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보험업계 숙원사업이었던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구축 비용을 두고 손해보험사와 생명보험사 간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축 비용은 1000억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생보업계는 실손보험 보유 계약건수가 4배가 많은 손보사들이 전산 구축 비용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손보업계는 점유율과 상관없이 균등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산구축 비용 1000억원 넘어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오는 10월25일부터 7725개 병원을 대상으로 시행되는데요. 내년 10월25일부터는 9만3472개 의원·한의원·치과·약국으로 시스템이 확대됩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진료를 받은 보험 가입자의 요청에 따라 요양기관에서 보험사로 보험금 청구 필요서류를 전자적 방법으로 전송하는 기능입니다. 진료비 영수증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수억장의 종이서류를 발급하고 처리하는데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소액 청구 포기가 없도록 절차의 복잡함을 해결한다는 취지입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보험업계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복잡한 보험금 청구 절차로 인해 청구하지 않은 소액 의료비만 연간 3000억원으로 추정되면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권고했는데요.
당시 국회에서 보험업법 개정안 발의됐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미 핀테크 업체를 통해 병원이 환자 정보를 보험사에 넘기며 보험금 청구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보험개발원을 통한 간소화 작업이 이뤄지면 결국 보험사들이 보험 가입자들의 정보를 유리한 방식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이 시스템이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선정되며 결국 개정안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렇게 보험업계 숙원 사업이 해결됐지만 보험사들은 정작 비용 부담률을 두고 이중적인인 태도를 보입니다. 시스템 구축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자는 손보업계와 수입 보험료 점유율을 기준으로 부담하자는 생보업계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보험업법 제102조의7에 따라 실손보험 청구 전산 시스템의 구축·운영에 관한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해야 합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어떠한 시스템을 이용할 때는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지 회사 규모에 따라 비용이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이 시스템도 동일하게 이용하는데 차등을 왜 두냐"며 "하나의 시스템을 같이 사용하는데 점유율이 높은 회사 위주로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생보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규모가 작은 생보사들이 비용을 똑같이 부담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매년 운영비용도 상당할텐데 처음부터 수익에 비례해 비용 부담을 정하는 것이 맞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손보사 "점유율 상관없이 균등 분담"
현재 손보사와 생보사는 공동으로 지난 2015년부터 보험비교 사이트인 보험다모아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때는 손보사와 생보사가 균등하게 구축비를 부담했습니다. 다만 이 사이트는 각 보험사들의 다양한 상품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실손보험만을 다루는 청구 전산화 시스템과는 다릅니다.
보험업계 숙원사업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오는 10월 시행을 앞뒀지만 보험사들은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구축 비용 분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8일 서울 한 건물에 약국과 병원의 모습. (사진=뉴시스)
실손보험은 손해를 보장하는 점에서 손보사들의 주 영역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실손보험 보유계약 건수는 총 3565만건으로 손해보험 82.8%, 생명보험 17.2%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보험료 수익 기준으로는 손보사가 10조8566억, 생보사가 2조3319억원입니다.
점유율에 따라 차등 분담한다면 손보사가 생보사보다 5배에 가까운 구축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합니다. 운영 비용도 향후 원수 보험료나 보유계약건수에 따라 달라집니다. 현재 실손보험 계약을 보유 또는 보유 예정인 보험사는 손보사가 17개, 생보사가 16개입니다.
실손보험 청구 서류 전송대행기관인 보험개발원은 현재 시스템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1000억원이 훌쩍 넘는 비용 소요가 예상되면서 손보사와 생보사 간 비용 분담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눈치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용 부담은 보험사들의 영역이고 분담 비율을 서로 고민하고 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못할 경우 금융당국이 중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구축 비용을 두고 손보업계는 반반, 생보업계는 점유율 기준으로 부담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내원객이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