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건보 지불제 개선?…"방향을 잘못짚고 있다"

정부, 대안적 지불제·본인 부담 차등제 추진
전문가, '보장성 축소·수가 인상' 안돼
대형 병원만 배 불리는 꼴…전면 재검토 필요
"비급여·실손보험 통제 없으면 건보 재정만 악화"

입력 : 2024-04-07 오후 12:00:00
 
[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정부가 필수 의료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 지불제도' 개선을 꺼내 들었지만 방향을 잘못짚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의료행위가 많을수록 많은 보상을 받는 '행위별 수가제' 보완이 골자인데, '보장성 축소·수가 인상'에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손보험 억제, 비급여 통제, 공공병원 확대, 필수 의료 분야 전문의 의무 고용 확대와 수가 인상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정부 "'집중 수가 인상' 구조 마련"
 
우리나라 수가제도는 진찰, 검사, 처치 등 의료행위별로 수가를 매겨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행위별 수가제'로 불립니다. 수가는 건강보험에서 의료기관 등에 의료서비스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을 말합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의료기관이 치료 결과보다 각종 검사나 처치 등의 행위를 늘리는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특히 수술과 입원, 처치 등의 상대가치는 낮게 평가되지만 영상이나 검사 분야는 높게 평가돼 필수진료 과목 약화로 이어지거나 자원배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전공의 지원 결과를 보면 비급여가 많아 상대적으로 수익구조가 좋고 근무 여건이 좋은 편인 피부과나 안과, 성형외과로 몰리는 경향이 상당합니다. 이들의 지원율은 각각 143.1%, 172.6%, 165.8%에 달합니다.
 
수익구조가 좋지 않거나 저출생으로 절대적 환자 수가 부족한 소아청소년과(25.9%), 산부인과(67.4%), 흉부외과(38.1%) 등의 지원율에 비해 압도적입니다.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필수 의료 등 저평가된 의료 서비스 항목에 관한 '집중 수가 인상'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 중증·필수 의료에 투입된 비용을 사후 보상하는 '대안적 지불제도', 환자의 의료 과다 이용 방지를 위한 '본인 부담 차등제' 등의 도입이 대표적입니다.
 
 
7일 의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건강보험(건보) 지불제도' 개선보단 비급여·실손보험 통제가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 "비급여·실손보험 통제가 먼저"
 
그러나 의료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방향을 잘못짚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필수 의료 분야 수가 인상이 기존에 별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겁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현재 정부가 필수 의료 강화를 위해 5년 동안 10조원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쓰겠다고 한 것 중 대부분은 '수가 인상'에 집중돼 있는데, 이는 수가가 낮아 의료대란이 벌어진다는 전제를 밑바탕에 깐 것"이라며 "하지만, 2009년 흉부외과 수가를 두 배 인상하는 등 그동안 꾸준히 필수 의료 수가를 높였음에도 전공의 지원은 늘지 않았다"고 꼬집었습니다.
 
전 국장은 대안으로 "실손보험 억제, 비급여 통제, 공공병원 확대, 필수 의료 분야 전문의 의무 고용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정부가 보장성은 축소하면서 수가 인상에 초점 맞추면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도 피부 미용만큼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건 불필요한 재정 낭비를 일으키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비급여·실손보험 통제와 수가 인상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며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재정 악화 우려에 관해선 "중증, 응급 의료 인상 폭은 크긴 하지만 전체 재정 지출에서 1조~2조원으로 전체 재정의 1~2% 범위라 문제 될 정도는 아니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지난 5일 열린 '필수 의료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 역할' 정책 토론회에서는 '의료의 사회화'의 중요성이 강조된 바 있습니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미래건강연구소 연구교수는 "사회보험체계에서 소비자가 직면하는 가격은 시장 균형가격 이하에서 결정되기에 필요 이상의 소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건강보험 통합 전에는 진료권 제한으로 규제가 일부 작동됐지만 단일보험 통합 뒤 사실상 이용규제가 전무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민부담률도 2022년 이미 32%에 도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약 34%에 근접하고 있다"며 "비급여와 실손보험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영석 교수는 "실손보험이 도입될 당시엔 보장성이 높지 않아 국민 부담을 덜어주고자 도입됐지만, 지금은 보장성도 획기적으로 확대됐다"며 "본인 부담의 일부까지 보장함으로 필요 이상 이용으로 건강보험 재정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데다 비급여 등에 대한 보상으로 인력 등 자원배분 비효율이 점점 심각해져 실손 체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지난 4월4일 서울시내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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