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한 때 서민 주거 사다리의 역할을 충실히 하던 빌라가 전세사기 여파와 아파트 선호 현상 등으로 찬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매매가가 상승전환하는 추세이며 전세가격도 장기간 오름세를 보이고 있지만 빌라 시장은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서울 시내 한 빌라 밀집 지역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15일 경매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 빌라 경매 낙찰률이 지난해 10,72%를 기록하며 10%대로 급락했습니다. 부동산 호황기로 일컫는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31.42%와 30.98%를 기록했지만 전세사기 여파와 그로 인한 전세보증보험한도 변경, 전세시세의 악화 등에 따른 여파로 낙찰률이 고꾸라졌습니다. 다만 올해 1분기 서울 빌라 경매 낙찰률은 12.81%로 전년보다 다소 상승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항력을 포기한 빌라 경매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전세보증보험을 들었던 것을 HUG가 대신 변제해주는 경우 임차인의 대항력 있는 지위를 승계받는데, 낙찰자가 생기더라도 보증금 인수에 대한 부담 때문에 낙찰자가 낙찰받아도 인수를 안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래서 HUG가 최근 대항력을 포기하는 인수 조건 변경부를 제안했다. 누군가 낙찰을 받는다 하더라도 전세보증금 차액 등을 부담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올 1분기 빌라 낙찰률 수치가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빌라 거주 수요도 대부분 월세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 등에 따르면 2021년 전국 빌라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4% 수준이었는데, 올해 1월에는 56%대에 달합니다. 이는 정부가 관련 통계 조사한 이후 최대치입니다.
기존 빌라 소유주들이 이사 등을 위해 빌라를 매물로 내놓아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여파로 인해 비아파트 회피 현상이 더 커진데다, 정부가 깡통전세를 막기 위해 빌라 보증한도를 공시가의 126%로 낮췄는데 이로 인해 전세시세가 낮아지면서 빌라를 전세로 내놓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빌라 거래마저 실종되자 집을 팔아서라도 보증금을 돌려주려는 집주인들도 진퇴양난에 놓인 겁니다.
하자 처리 등에서도 아파트 대비 상대적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파주 야당동 빌라에 거주하는 한 김 모씨(37세)는 "건축주 직접 분양 빌라에 살면서 하자 처리 등을 요구해도 개인별 하자 처리 접수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빌라 거주민들끼리 협의체를 간신히 만들어서야 일처리가 되는 등 아파트보다 불편한 점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빌라 입주민들은 서민주거사다리 역할을 해온 빌라 시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빌라 임대인은 "전세사기 등을 막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비아파트 시장의 심각한 불안과 위축을 불러오고 있다"며 "비아파트 장기일반임대 주택의 경우 보증금 반환이 쉽지않다. 그래서 주택을 팔아서 보증금을 돌려주려고 해도 등록 말소도 허용하지 않아 힘든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빌라 세입자들은 깡통전세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세보다 월세를 찾으려고 하고, 집주인은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서 전세세입자를 원할 수 밖에 없다"며 "빌라 시장에서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현상은 좀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