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총선 이후 신선식품부터 가공식품까지 품목을 가리지 않고 가격이 치솟으며 서민들의 고통이 커지는 실정인데요. 상황이 급해지자 정부는 긴급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 투입하는 등 물가 잡기에 나섰지만 한동안 고물가 부담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22일 강원지방통계지청 도내 주요 채소물가품목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배추(통배추 1포기 기준) 평균 판매 가격은 5127원으로 작년 4153원 대비 1000원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또 이번 총선 기간 화두로 떠올랐던 대파(1단 10뿌리)의 경우 1년 새 2727원에서 3345원으로 올랐고, 애호박(1개 인큐베이터)은 2121원에서 2689원으로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풋고추(100g)는 1540원에서 2012원, 열무(중간 크기 1단)도 4124원에서 4513원, 새송이버섯(300g 1봉지)은 1657원에서 1680원으로 올랐습니다.
총선이 끝나면서 식품·외식 기업들도 속속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롯데웰푸드는 코코아를 원료로 한 초콜릿류 건빙과 17종을 대상으로 가격을 오는 6월부터 평균 12%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초콜릿의 주 원료인 코코아 시세가 급등세를 이어가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데 따른 조치라고 롯데 측은 설명했습니다. 제품별로 가나마일드 34g은 권장소비자가가 기존 1200원에서 1400원, 초코 빼빼로 54g은 1700원에서 1800원, 크런키 34g은 1200원에서 1400원으로 각각 오릅니다.
아울러 파파이스 코리아는 이달 15일부터 샌드위치(햄버거) 메뉴, 치킨 메뉴, 사이드 및 디저트, 음료 등 가격을 평균 4% 인상했습니다. 또 같은 날부터 치킨 프랜차이즈 굽네도 치킨 메뉴 9개의 가격을 1900원씩 높였습니다.
먹거리 물가 OECD 35개국 3위…환율·유가 급등에 고물가 부담 지속
이 같은 물가 고공 행진은 먹거리 가격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1% 오르며 2개월 연속 3%대를 이어갔는데요.
농축수산물이 11.7%로 지난 2021년 4월(13.2%)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상승하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견인했습니다. 또 같은 기간 외식 물가 상승률은 3.4%로 전체 평균보다 0.3%포인트 높은 점도 한몫했습니다.
정부는 물가 급등이 지속되고 있는 데 대해 지난해 이상 기후 문제로 작황이 부진했고, 신선식품의 저장량이 감소하면서 전체 물가 상승세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긴급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 투입하고 납품단가 인하 지원 사업을 통해 대형마트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 수급 안정에 힘쓰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정부가 밝힌 바와 달리 현장에서는 이를 좀처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중론입니다. 정부가 강조하는 지원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오르고 있는 통계청 통계조차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옵니다.
주부인 강모씨(42·여)는 "정부가 물가 안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지만, 현장에서는 모든 먹거리 가격이 올라 이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며 "정부가 현상을 잘못 진단하고 있거나, 아니면 물가 상황을 무시하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글로벌 기준으로도 국내 물가 상승세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우리나라의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는 1년 새 6.95% 상승했습니다. 이는 OECD 평균 상승률 5.32%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자, 통계가 집계된 35개 회원국들 중 튀르키예(71.12%), 아이슬란드(7.52%)에 이어 세 번째로 높습니다.
(그래픽 제작=뉴스토마토)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낮아지고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까지 다가선 상황입니다. 국제 유가 역시 치솟는 점도 고물가 기조를 장기화할 수 있는 요인이라는 분석입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난해부터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을 시도했는데, 이 부분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다고 본다"며 "올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지난해의 경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는 타이밍이 몇 번 있었는데 이를 놓친 것이 컸다"고 지적했습니다.
우 교수는 "어떻게 보면 정부가 경제 주체들에게 물가와 관련해 오판할 수 있는 여지를 준 셈이다. 최근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 반전한 점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고물가 기조 장기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서민들이다. 실효성 있는 물가 안정 방안이 마련돼야 할 때"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채소 코너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