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이른바 '라인 사태'가 한·일 외교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라인'이 국민 메신저로 부상하자 일본 정부는 '라인야후' 대주주인 한국 네이버를 향해 '지분 축소' 압박에 나섰습니다. 앞서 2019년 7월1일 '반도체 소재 3대 품목'(불화수소·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에 대해 수출규제를 한 일본 정부가 또다시 뒤통수를 때린 셈입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출범 직후부터 한·일 관계 개선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냈지만, 일본은 되레 민간 기업의 경영권 강탈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 정부가 역설한 '물컵의 반 잔'이 채워지기는커녕 일본발 기술주권 사냥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윤석열정부의 '저자세 외교'가 초래한 결과"라고 비판했습니다. '라인 사태'에 대한 뒷북 대응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13일 "정부 차원의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네이버가 일본 소프트뱅크와 절반씩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는 글로벌 메신저 '라인'의 경영권을 일본 총무성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 요구에 따라 일본 기업에 내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 네이버 경영권 강탈 '초읽기'…대통령실 '뒷북 대응'
네이버가 보유한 '라인야후' 지분 매각 압박의 직접적 계기는 지난해 11월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입니다. 일본 방송·통신 주무 부처인 총무성은 지난해 11월 개인정보 51만 여 건 유출 사건이 발생한 '라인야후'에 올해 3월 행정지도를 내렸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을 명분 삼아 라인야후가 네이버와의 지분관계를 재검토하라는 겁니다.
'라인야후'는 최대주주인 에이홀딩스가 전체 지분 64.5%를 가지고 있는데요.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각각 50%씩 출자해 만든 합작법인입니다. '라인야후'가 위탁 계약 축소 등 재발 방지책을 내놨음에도 일본 총무성은 2차 행정지도를 통해 소프트뱅크가 네이버 지분을 추가 매입해 경영권을 장악하도록 압박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지분이 0.1%만 넘어가도 라인의 경영권이 넘어가는 건데, 우리 기업의 글로벌 성공 사례인 '라인'이 일본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는 실정입니다.
일본 정부가 민간기업의 경영권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우리 '기술 주권'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건데요. 정치권 안팎에서는 취임 초부터 미국과 일본에 과도하게 치중한 현 정부의 외교 민낯이자 굴욕 외교의 대가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며 "경제 주권을 포기하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냐, 이러다 독도마저 내주는 거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도 "라인야후는 '정부 대 민간' 문제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인 외교 문제"라며 "지난 2년 동안 '대일 굴종 외교'가 몸에 배 이제는 입도 뻥긋 못하는 거냐"고 맹공했습니다.
그러자 성태윤 정책실장은 같은 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반일 조장 정치 프레임이 국익을 훼손하고 우리 기업 보호와 이해관계 반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분명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1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한일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 '캠프 데이비드' 정신 위반…윤석열정부 외교 패착"
문제는 '라인 사태'가 미·일에 편중된 외교를 펼친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윤석열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민심에 역행하는 외교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앞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가 지난해 3월 24일 공표한 여론조사(3월 20∼22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62.0%는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배상하고 일본 정부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대일 해법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가 같은 해 5월 12일 발표한 조사 결과(5월 8∼10일 조사)에선 국민의 58.1%가 한·일 관계에 대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내놓으며 "물컵의 반 잔이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뒤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조사기관이 지난해 6월 2일 공표한 여론조사 결과(5월 30∼31일 조사, 이상 ARS 무선전화 방식·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국민의 49.1%가 "일본이 윤 대통령의 화해 정책 기조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편향된 대일 외교 노선은 집권 3년 차에도 고수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당시에도 한·일 관계에 대해 "과거사가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인내해 가면서 가야 할 방향을 걸어가야 된다"며 "양국의 미래와 또 미래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야 된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사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전쟁범죄자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했고, '외교청서'에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 보수 우익사관을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모양새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8월엔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를 처음 바다로 방류했습니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우리 정부가 한·일 협력을 위해 과거사 문제까지 양보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해 온 반면 일본은 한·일 간 협상에서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윤석열정부가 털어줬다 생각하고 거침없이 치고 나오고 있다"며 "윤석열정부 대일 외교의 패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도 "한·일 관계를 개선했다는데, 지난해 11월에 이 문제가 터진 뒤로 6개월 가까운 시간동안 정부는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라며 "지난해 한·미·일 사이의 경제·안보 협력을 위한 캠프 데이비드 정신을 일본이 위반한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