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조원태
한진(002320)그룹 회장이 보잉 항공기 추가 구매 검토라는 강수를 뒀습니다. 신기재 도입으로
대한항공(003490)의 미래를 준비하는 측면도 있지만,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조 회장은 2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총회(AGM)에 앞서 진행한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르면 다음 달 보잉 787 항공기 30대를 주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보잉은 강한 회사'라는 언급과 함께 보잉이 각종 부침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현재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을 위해 14개 국가의 승인을 받고 있습니다. 12개 국가에서 순조롭게 승인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인 EU 집행위원회(EC)에서는 조건부 승인을 받은 상태이며 미국의 승인만 남겨둔 상황입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조 회장은 오는 10월 말까지 미국의 승인을 받아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조 회장의 이런 행보를 두고 원활한 합병을 위한 정략적인 판단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은 잇따른 사고와 결함으로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경쟁사인 에어버스가 반사이익을 얻었습니다. 지난해 기준 에어버스는 상업용 항공기 인도 및 순주문 대수 기준 점유율 1위 차지하며 보잉의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잉의 항공기 구매 검토 언급은 조 회장의 강력한 합병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항공기 구매를 결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게는 수조원의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실제로 조 회장의 인터뷰 이후 대한항공은 공시를 통해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관련해 당사의 중장기 기재 계획에 따라 내부 검토 중에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내부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재 구입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이사회에서 일련의 절차를 거쳐 이뤄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조 회장의 이번 의지 표명으로 대한항공은 미국 승인과 보잉사와의 우호적인 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보잉이라는 회사가 부침을 겪고 있을 때 항공사에서 힘을 실어주면 양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영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조 회장의 행동은 과감하지만 실리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의 기재 추가 구입은 합병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 시기에 항공기를 추가로 구매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지난 2019년에도 보잉사 787 '드림라이너의 가장 큰 모델인 보잉787-10 항공기를 20대와 보잉787-9 항공기 10대 등 총 30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MOU를 체결한 바 있습니다. 주문한 30대 항공기 가운데 현재 기준 3대만 도입됐습니다. 대한항공은 올해 10대를 추가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국토교통부에 알렸지만 5일 현재 기준 올해는 한 대의 항공기도 받지 못했습니다. 각종 결함 이슈와 수요 증가로 항공기 제작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 회장의 추가 항공기 구매는 다소 의아한 결정일 수 있습니다.
다만 항공기 제조사와 항공사와의 관계, 미국의 기업결합심사 통과라는 큰 맥락에서는 조 회장의 발언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구매 계약은 실제로 이뤄져봐야 아는 것"이라며 "일단 먼저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게다가 신기재 도입은 ESG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앞서 대한항공은 지난해 친환경, 고효율 신기재를 추가 도입하며 기단 현대화에 박차를 가한 바 있습니다. 항공사들은 항공기 운항 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소음 등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신기재를 도입하면 항공기 운항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가스와 소음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