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미국·중국 경제 패권 전쟁의 불똥이 전기차로 튀었습니다. 미국은 값싼 중국 전기차 공습을 막기 위해 관세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의 꽃인데요. 전쟁 흐름에 따라 글로벌 산업 지도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005380) 등 국내 완성차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오는 8월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100%로 4배 올릴 방침입니다.
올해 1분기 글로벌 전기차 인도량.(그래픽=뉴스토마토)
관세 인상 이유에 대해선 중국의 '불공정무역'으로 발생하는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는데요. 미래 핵심 먹거리 산업인 전기차 시장을 중국이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무장한 중국 전기차가 낮은 가격에 제품을 해외로 밀어내고 있고 해당국의 산업과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전기차 시장이 최근 부진에 빠진 것은 내연기관 차량 대비 비싼 가격의 영향이 컸는데 1000만원대에 불과한 중국 전기차는 대중화를 통해 전기차 시장 전반을 장악할 가능성이 크죠. 이렇게 되면 미국은 물론 유럽, 한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전기차의 경쟁력은 악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동차 산업이 무너진다면 제조업의 기반도 위태로워질 수 있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에 나섰습니다.
중국도 강경 대응으로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 4월 중국과 무역협정을 맺었음에도 고율 관세를 부과한 국가의 상품에는 중국 역시 동등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관세법을 개정했습니다. 또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관세 장벽 우회를 위해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EU와 브라질에선 이미 현지 공장을 건설 중이고 튀르키예는 BYD와 공장 유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5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의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의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 움직임에 현대차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는데요. 다만 미국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입지가 좁은 탓에 당장은 큰 영향이 없거나 일부 수혜만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세(현행 25%) 등으로 중국 전기차는 아직 미국 시장에 제대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BYD의 지난해 미국 판매량은 5대에 불과했죠. 반면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8%로 테슬라(55%)에 이어 2위였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중국산 관세 인상이 다른 국가로 퍼져나가야 현대차그룹이 본격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중국산 전기차가 미국 이외 지역에서 활로를 뚫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앞으로 EU도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에 나설지, 멕시코 등을 통한 중국의 미국 우회 진출이 막힐지가 관건으로 꼽힙니다. EU의 경우 지난 12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대 38%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현재는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수의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과 전기차 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있어 미국처럼 대폭 관세를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반대로 중국의 미국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질 경우 대체 시장인 제3국 수출 확대를 타진할 가능성이 있어 해당 시장에서 한중간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BYD는 브라질, 헝가리,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현지 전기차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거나 가동 중에 있죠. 남미와 동남아시아 등 제3국은 최근 현대차와
기아(000270),
KG모빌리티(003620)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진출해있습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애초 미국이나 유럽은 관세가 높아 중국산 전기차들이 들어가기가 어렵다"며 "유럽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지만 장기적으로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보복관세 정책에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오히려 저가의 중국산 전기차가 중동, 동남아 등 제3세계로 시장을 넓혀가 이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