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블리다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을 전격 방문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결속에 나선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반서방 연대'를 한층 더 강화할 것으로 관측되는데요. 북한의 대러 무기 지원에 따라 러시아가 상응하는 기술을 전수할 경우 한반도 정세가 악화일로를 걸을 전망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북쪽 116㎞ 떨어진 두브나의 핵 공동연구소를 방문해 NICA 이온 입자 가속기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러 '반서방연대' 결속…"군사·우주 기술 협력"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8일 저녁 9시께 북한에 도착했습니다.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약 9개월 만입니다.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건 푸틴 대통령이 유일한데요.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00년 7월 러시아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찾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하고 북·러 공동선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던 만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지금과 대비됩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포함한 6·15 공동선언 지지 의사를 밝혔는데요. 이번 방북에서는 북한과 '반서방연대' 강화를 예고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방북에 앞두고 북한 <노동신문>에 기고 글을 작성해 이번 방문의 의미를 설명했는데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체계를 발전시켜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일정은 24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크렘린궁은 두 정상이 확대 형식 회담과 비공식 대화 등 다양한 형식으로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서방의 제재 대상에 오른 양국은 경제적 제재를 타파할 공통된 인식을 갖고 해법을 모색한다는 계획입니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지난해 러시아와 북한의 교역 규모가 9배 증가해 3330만달러에 이르렀다며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개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북에는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데니스 만투로프 제1 부총리,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 부문 부총리, 미하일 무라시코 보건장관, 유리 보리소프 로스코스모스(연방우주공사) 사장, 올레크 벨로제로프 철도공사 사장 등이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방북 수행단의 면면을 보면 양국의 군사기술 협력 및 에너지·경제 협력을 비롯해 우주 기술 협력이 예상됩니다.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 당시에도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굉장히 관심 두고 있으며 우주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북한 인공위성 개발 도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러시아는 북한이 북·러 직항 노선 개설을 검토 중이라고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와 관련해 "이번 수행원 명단에 러시아 연방우주공사 사장, 철도공사 사장, 에너지 부문 부총리 이런 인사들이 포함돼 있는 게 2000년 푸틴 대통령 방북과 비교해서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며 "지난해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던 만큼 후속 차원에서 우주 기술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오른쪽 두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로켓 조립 격납고를 둘러보며 얘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거리 두는 중국…푸틴 방북 날에도 말 아꼈다
북·러 간 밀착이 본격화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격랑 속에 빠질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지난 9일에 이어 푸틴 대통령이 방북하는 당일에도 군사분계선(MDL) 남측으로 진입했다 우리 측의 경고 방송 및 경고 사격으로 북상했습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지뢰를 매설하려면 불모지화가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한 전초 작업 차원에서 작업을 하러 온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은 올해 1월 최전방 감시초소(GP)를 복원하고 경의선과 동해선, 화살머리고지 등 남북 연결도로 일대에 지뢰를 매설하는 등 남북관계 단절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의 연장선으로 보입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으면서 남북 관계를 단절시키고 러시아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밀착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외교부는 "러시아와 북한 간의 협력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거나 역내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며 "또한, 러 측에도 이러한 입장을 분명히 전달해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우리 외교부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 당일 한·중 고위급 외교안보대화(외교·국방 2+2 대화 협의체)를 열고 북·러 결속에 맞불을 놨습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의 방북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것은 러·조(러·북) 간의 양자 왕래"라며 북·러 협력에 거리를 뒀습니다.
북·러의 밀착에 대해서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등의 규탄 목소리가 더해집니다. 17일(현지시각) 피터 스타노 EU 대변인은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노력에 대한 정치적 또는 다른 어떤 지원도 중단해야 한다"며 "러시아와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와 유엔 헌장 위반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지난 몇 달간 북한이 러시아의 전쟁 노력을 돕기 위해 수십 발의 탄도미사일과 1만1000개가 넘는 무기 컨테이너를 불법 이전하는 것을 봤다"며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 심화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 세계 비확한 체제를 지키는 것,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준수하는 것, 러시아 침략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지지하는 것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크게 우려해야 할 사안"이라고 짚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