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대선 TV토론과 대법원 판결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미국 국채 금리는 치솟고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특히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가 더 높은 관세 정책을 약속하면서 미국의 수입 물가를 높이고 재정적자는 키울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유럽에서도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의 영향으로 극우 정당이 약진하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남발하고 있는데요.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이 대두되면서 한국 경제에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가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 미국 대선 첫 번째 TV 토론회 생방송 화면을 시청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트럼프발 강달러'의 귀환
글로벌 자산운용사 로스차일드의 벤자민 멜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4일(현지시간) <로이터>를 통해 최근 미국 장기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멜먼 CIO는 하반기 경제 전망을 제시하면서 "세금과 이민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 방식이 더 넓은 경제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얀 하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안한 대로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10%포인트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할 경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5번 올려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관세가 높아지면 미국 내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고 이로 인해 물가 상승률도 높아져 금리를 쉽사리 낮출 수 없는 환경이 되기 때문인데요. 관세 부과 시 미국 물가 상승률이 1.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이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다시 올려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미국이 금리 인하 시기를 늦출 경우 한국 기준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영향을 미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시장에서는 금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미국이 금리 인하를 늦출 수밖에 없는 요인이 발생한다면 한국도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져 고금리 상황이 더 지속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RB)는 전통적으로 물가와 실업률 모두 중요시하는 만큼 두 가지 요소가 고려돼 금리가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관세 부과, 잠잠하던 '인플레 가속화'
트럼프는 재선 시 모든 국가에 10% 보편적 관세, 중국에 최소 60% 관세 등 대규모 관세를 부과할 예정입니다. 보호무역주의로 가게 되면 국제적으로 상품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반적인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미국 내 수입 물가가 급등하면 잠잠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습니다. 최근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 16명은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재선 시 물가가 치솟아 세계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 인상 폭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물가에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만약 트럼프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국내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 "통상마찰이 제일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국내 수출산업에는 당연히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고한 강경한 이민 정책도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저임금 노동인력을 추방할 경우 노동 공급이 줄어 인건비가 상승하면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포퓰리즘 공약, '재정 위기' 심화 우려
게다가 트럼프는 대규모 감세 공약을 내건 만큼 적자 규모도 커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재무부가 더 많은 국채 발행에 나설 수 있는데요.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코로나 구제안 2조4000억달러를 감안해도 연방 정부 부채는 8조달러(한화 1경1056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장에 돈이 풀리면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집니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유럽에서도 번지고 있는데요. 앞서 유럽의회 선거는 물론, 프랑스 총선에서도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이 프랑스 1차 조기 총선에서 최다 득표를 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금 인하, 연금 확대 등 포퓰리즘성 정책을 예고해온 만큼 재정적자가 부각되면서 유럽 경제도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영국 극우 정당인 영국개혁당도 사상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하면서 원내 정당으로 본격 도약을 앞두고 있는데요. 유럽에서 반이민,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극우 정당의 약진은 포퓰리즘의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거시팀장은 "미국, 유럽 모두 정부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면 국채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고 국채 가격이 하락하는 만큼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겨우 물가가 잡혀가고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려는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상황입니다.
또 윤 팀장은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중간에 끼어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컨틴전시 플랜은 세워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