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안창현 기자] 정부의 원자력 정책을 다루는 원자력진흥위원회 위원이 미국 원전회사의 이사를 맡고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정모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미국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설계업체인 '뉴스케일파워' 이사를 맡은 상태에서, 원자력진흥위원도 겸직하고 있는 겁니다. 원전업계에서는 이해충돌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0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정 교수는 지난해 12월 원자력진흥위원으로 선임됐습니다. 임기는 3년입니다. 원자력진흥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국내 원자력 이용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입니다. 정부의 원자력진흥종합계획과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원자력 수출촉진·지원 등의 건도 다룹니다.
그런데 정 교수는 2022년 12월 미국의 뉴스케일파워 이사로 영입된 바 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2023년도 뉴스케일파워 연간보고서를 보면, 이사 명단에 정 교수 이름이 등장합니다. 뉴스케일파워 홈페이지에도 정 교수 사진과 이름이 나옵니다. 정 교수는 뉴스케일파워 이사를 맡은 상태에서 원자력진흥위원에 선임된 겁니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최대 SMR 설계회사입니다. 국내 기업과도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최근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가 진행하는 370억달러(약 50조원) 규모의 SMR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부터 뉴스케일파워에 총 1억4000만달러를 투자하면서 이 회사가 수주하는 프로젝트에 핵심 기기를 납품키로 합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위원회에 속한 인사가 유력 해외 기업의 이사로 재직하는 건 문제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 국장은 "정부 정책을 심의하고 제안하는 위원회에서 관련 산업계 기업 임원이 포함됐다면 이해충돌 여지가 충분하다"며 "공직자 인사의 경우 과거 이력을 통해 이해충돌 여부를 사전에 검토하도록 하는데, 정부 위원회에서도 위원들의 선임 규정을 통해 업계의 특정 이해관계가 반영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책 수립 권한이 있는 위원회라면 현업의 사익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볼 수 있다. 얼마든지 기업의 로비창구나 방패막이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라며 "과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 관련 위원회에서도 건설업계와 관련된 사람들이 들어와 문제가 된 사례들도 적지 않다"고 했습니다.
'SMR 필수적' 주장…이해충돌 지적
정 교수가 맡은 직책 중엔 한국원자력학회 회장도 있습니다. 정 교수는 지난해 9월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정 교수는 SMR 개발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열린 '제5회 혁신형 SMR 국회포럼'에서도 SMR의 경제성과 친환경 개발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정 교수는 특히 지난해 11월 뉴스케일파워가 미국 유타주 지방전력협회와 진행한 소형모듈원전사업이 무산됐을 즈음 언론 기고를 통해 "앞으로 대형 원전 시장만큼이나 성장하고 대두될 시장이 SMR 시장"이라며 "우리나라 OPR1000 원자로의 1000㎿조차 버거운 나라가 많다. 국가 전체 전력량이 그것의 4분의1밖에 안 되는 나라도 많다. 이런 나라들의 경우에는 SMR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원전업계 관계자는 "원자력 안전규제를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선 위원들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필수적"이라며 "원자력진흥위원회는 전문성은 유지되고 있으나 도덕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범이 거의 전무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최근 민간 원전사업자, 해외 원전사업자 등이 등장하고 있어서 기존과 달리 이해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국내·외 민간 원전사업자 임직원이 원자력진흥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면 당연히 이해충돌이 발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배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모 경희대 교수는 뉴스케일파워 홈페이지에서 이사회(board of directors) 구성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진=뉴스케일파워 홈페이지 캡처)
참여연대 "이해충돌 방지 입법 미비"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위원 선임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터라 입법 미비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원자력진흥위원회는 원자력진흥법 제5조에 따라 위원장을 포함해 9명 이상, 11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됩니다. 위원장은 국무총리, 당연직 위원은 기획재정부 장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외교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맡고 있습니다. 임명직 위원은 6명으로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됐습니다. 정 교수는 그 6명 가운데 1명입니다.
하지만 원자력진흥법엔 위원의 영리활동 등을 규정하는 조항이 없습니다. 원자력진흥법 제6조에서 위원의 결격사유로 국가공무법원 제33조의 공무원 임용에 관한 일반적인 기준을 준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용문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은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과 같이 사적 이해관계자가 위원으로 위촉됐다면 업무와 관련해 회피 의무를 가진다든지, 특정 안건에 대해 제척을 하는 등의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위원회 규정을 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 교수 "이해충돌 아니다"
<뉴스토마토>는 해당 의혹에 대해 정 교수와 원자력진흥위원회에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정 교수는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 GS에너지가 뉴스케일파워에 투자를 하고 있고, 투자자 입장에선 한국 기업들 지분과 이익을 대변할 한국인 이사가 필요해서 제가 이사로 선임된 것"이라며 "정부 위원회 위원이 되는 것과 해외에서 한국 기업의 지분과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로 활동하는 게 논란이 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뉴스케일파워 이사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이해충돌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원자력진흥위원 심의 때 뉴스케일파워 이사로 있다는 걸 서류로 다 제출했다"고 했습니다.
원자력진흥위원회를 담당하는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원자력진흥위원회는 원자력진흥법 3조에서 8조까지의 규정대로 위원 선임 과정이 이뤄지고 있으며, 결격사유는 국가공무원법 33조를 준용하고 있다"며 "정 교수는 이에 해당하는 법적 결격사유가 없었고 원자력 분야의 전문성을 판단해 위원으로 선임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현재 원자력진흥위원회엔 구체적인 이해충돌 관련 규정은 없다"고 했습니다.
최병호·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