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지윤·김한결 기자] "치솟은 물가는 안 잡나요?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영세 소상공인 어려움을 더 키울 거고, 고용난은 더 심각해질 겁니다."
내년 최저임금이 1988년 제도 도입 이래 최초로 1만원을 웃돌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일 오전, 명동과 망원시장 등 주요 상권에서 만난 상인들이 기자에게 토로한 목소리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사람들의 발걸음이 회복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다', '고금리·고물가 등이 이어지면서 체감상 불경기는 여전하다'는 반응이 공통되게 나왔습니다.
명동에는 아직도 거리마다 '임대' 딱지가 붙은 가게가 1~2곳씩 있었고, 비교적 인건비가 적게 나가는 외국인만 고용하거나 사장이 혼자 1인 형태로 운영하는 곳도 다수였습니다. 식당의 경우엔 손님이 직접 주문할 수 있는 자동화 기기인 키오스크가 일손을 대신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서울 전통시장 중 하나인 망원시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12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 폐업 가게. (사진=뉴스토마토)
최저임금 1만30원…"키오스크 쓰겠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노·사·공 사회적 대화기구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1자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0원으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올해 9860원 대비 1.7%(170원) 오른 수준입니다. 월급 기준으로는 209만6270원(주 40시간·월 209시간 근무 기준)에 해당합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바뀌는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기준 48만9000명,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기준 301만1000명으로 추정됩니다.
최저임금 인상 소식을 접한 소상공인들은 답답한 심정을 표했습니다. 을지로 입구역 지하상가에서 5년째 요식업을 하고 있는 김모씨는 "노동계가 요구한 1만2600원까지 인상되지 않아 다행이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영세 소상공인들은 대부분 문 닫고 말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무엇보다 물가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 인건비 부담이 더해진 것이 걱정입니다. 그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노동계와 서민 어려움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밥만 놓고 보더라도 한 줄이 5000원을 넘는 등 물가가 무섭게 뛴 상황에서 임금 인상은 곧 고물가 여파를 지속시킬 것이고, 인건비를 줄이려는 소상공인들은 키오스크 도입이나 파트타임(시간제 고용) 노동자 확대 등으로 비용을 줄여나갈 것이란 설명입니다.
실제로 김씨가 운영하는 가게에 현재 아르바이트생은 파트타임 포함 4명이지만, 키오스크는 3대나 있었습니다. 그는 "키오스크 1대 가격이 70만원으로, 3대 구입한 게 한 명 인건비보다 적다"며 "과거와 같이 사장과 노동자가 이야기도 나누면서 동고동락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평했습니다.
특히 그는 "전 세계 한국에만 존재한다고 하는 주휴수당부터 현실을 반영해 개선할 수는 없냐"며 최저임금 인상보다 소상공인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주휴수당'이라고도 지목했습니다. 주휴수당은 1주 동안 규정된 근무일수를 다 채울 경우 유급 주휴일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명동 사거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정모씨 역시 "수입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로 나가는데 최저임금 1만원은 그 숫자 자체에서 느껴지는 부담이 크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울상을 지었습니다. 정씨는 "최근 사장인 제가 일을 더 하고 아르바이트생(알바생)은 바쁜 시간대에만 쓰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일하겠다는 지원자가 예전에 비해 엄청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며 "소상공인도 소상공인이지만, 최저임금 인상 타격은 알바생이 더 크게 받을 것"이라 전했습니다.
망원시장에서 반찬가게를 8년째 하고 있는 이모씨는 최저임금 자체보다 '물가'와 '수수료'에 미칠 영향을 더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현재 인력사무소에서 노동력을 수급 받아 장사를 하고 있는데,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물가부터 사무소에 내는 수수료까지 다 오르게 된다"며 "물가 인상만큼 판매 가격을 높이지도 못한 상황에 최저임금 인상 폭만큼 인건비를 또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요즘 나이 많은 사람들도 정보를 얻는 게 빨라 최저임금 정도로만 줬다간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바로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며 "노동 강도가 업장마다, 시간 때마다 다 다른데 '최저'라는 이름으로 임금을 통일한 뒤 경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올리면 자영업자는 어쩌라는 거냐"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12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사진=뉴스토마토)
"소상공인 어려움 극심해질 것"
이번에 최임위가 내린 최저임금 인상 결정으로 소상공인 어려움은 더 극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소상공인은 국내 사업체의 95.1%를 차지하는데요. 매출 저하, 고비용 구조로 지불 능력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신규 고용을 넘어 고용 유지도 고민해야 되는 처지에 놓였다는 분위기입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날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1만원을 넘긴 최저임금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연일 소상공인들의 연체율, 폐업률, 대출 규모가 증가한다는 소식이 나오는 현재, 소상공인들은 한계에 직면했다"며 "단순히 최저임금 상승률이 낮다, 물가 상승률 대비 적지 않느냐는 이야기는 정상적인 환경이라면 환영할 수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견디고 있는 지금은 적용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취약 근로자들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차 본부장은 "소상공인들이 사회에서 맡는 역할 중 하나는 최저임금을 받고 취업하고자 하는 저숙련 기술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소상공인 업장에 들어와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며 "소상공인, 취약 근로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야 했는데 결국 소상공인과 취약 근로자 모두 공멸하는 결정을 내린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임위에서 표결이 무마된 업종별 차등 적용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최저임금법 제4조(최저임금의 결정기준과 구분) 제2항에 따르면 사업의 종류별 구분은 최임위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업종을 구분해서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있지만 최임위에 묶여있는 상황인 겁니다. 국내 최저임금은 도입 첫해인 1988년 업종별 구분 적용이 이뤄졌고 1989년부터 현재까지 단일 최저임금입니다.
오세희 민주당 의원은 "업종별 구분 적용이 정말 중요하다. 최저임금법에 업종 구분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한다"며 "구분을 하게 되면 근로자들에게 낙인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노사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업종별 차등 적용에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주장도 함께 나옵니다. 오 의원은 "정부가 최저임금 근로자들에 대한 보호를 해주고 울타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업종 구분을 하고 구분한 곳은 정부가 기금을 마련하는 등 복지로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이 12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년도 적용 최저임금이 결정된 뒤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임지윤·김한결 기자 dlawldbs2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