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일본 사도광산이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권고를 일본이 이행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가 믿어준 덕분입니다.
일본 사도광산 내 터널. (사진=연합뉴스)
WHC는 이날 인도 뉴데일리에서 회의를 열고, 일본이 신청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컨센서스(전원동의) 방식으로 결정했습니다. 정부는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하고,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한 전시물을 설치한 점을 고려해 동의했습니다.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약속을 명심하며, 특히 한반도 출신을 포함해 모든 사도광산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며 "일본은 이미 노동자의 고난을 설명하는 전시 자료와 시설을 설치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이 새로 설치했다는 전시물은 사도광산에서 2㎞가량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마련됐는데요. 박물관 2층 한 구획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인 노동자의 가혹한 노동조건에 대한 사료가 전시됐습니다.
열악한 한국인 노동자의 삶에 대한 설명이 적힌 패널도 설치됐습니다. 여기에는 '국민징용령' 도입으로 1000명 이상의 한국인 노동자가 광산에 있었고, 모집·관 알선에 조선총독부가 관여했으며, 위험한 작업에 한국인 노동자가 일본인보다 더 많이 종사했고, 한국인 노동자의 월평균 근로일이 28일에 달했다는 점 등이 적시됐습니다.
일본은 사도광산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을 중앙·지방 정부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매년 사도섬에서 개최할 계획입니다.
이런 일본 조치는 한국과의 협상을 통해 이뤄졌는데요. 지난달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사도광산에 대해 등재 '보류'를 권고하며 '전체 역사 반영' 등을 주문한 뒤, 협상이 진행됐습니다.
정부는 일본이 2015년 또 다른 강제 노역 현장인 '군함도'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후,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점을 고려해 이번엔 실제 행동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한 걸로 전해집니다. "어음을 줬다가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현찰로 받았다"는 설명인데요.
그러나 다수의 한국인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 노동'에 처했다는 점이 전시물이나 추도식 과정에서 얼마나 부각될지는 불분명합니다. WHC 회의에서의 일본 대표 발언이나, 지금까지 확인된 전시물에는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 노동'에 처했다는 명시적 표현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시실의 위치·규모가 당시 한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엔 불충분하다는 분석입니다. '아이카와 박물관'은 승용차 2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건물이며, 강제동원과 관련한 전시 공간 역시 박물관 전체의 10분의 1 크기에 불과합니다. 인근에 승용차 157대를 주차할 수 있는 새로 지은 전시관이 있는데도 이곳에선 강제동원 관련 전시를 하지 않습니다.
매년 열기로 한 추도식도 조선인보다 일본인을 추모하는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일본 정부가 약속 사항을 얼마나 성의 있게 이행할지도 의문인데요. WHC 권고는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이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전날 정부가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은 일제히 비판했습니다. 황정아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과거 약속조차 지켜지지 않는데, 미래 약속이 지켜질 거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천진난만한 외교에 대한민국 주권과 국익이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홍성규 진보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등재 합의는 성실한 준수를 모두 확인하고 난 다음에도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