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확전의 기로에 서 있는 중동 정세가 오는 11월 5일(현지시간) 예정된 미국 대선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박빙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부는 경합주에서 결정 날 수밖에 없는데요. 해리스 부통령으로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 따라 지지를 철회한 전통적 지지층을 다시 확보해야 경합주에서 승부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지지부진한 휴전 협정 탓에 해리스 부통령에게 불리한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20일(현지시각) 가자지구 가자시티 알리말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학교 건물 잔해에서 희생자 시신을 옮기고 있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스라엘군이 난민들의 대피소로 이용되는 학교를 공습해 팔레스타인인 최소 9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트럼프 '틈새 공략'…해리스 '줄타기'
25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을 3차 세계대전으로 이끌고 있다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그는 "중동에서 누가 우리를 위해 협상하고 있나"라며 "폭탄이 사방에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집권 세력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이 중동 정세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말 가자지구 3단계 휴전안을 제시했지만 아직까지 진전은 없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무력 충돌 이후 확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나왔는데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을 '슬리피 조'(졸린 바이든)라고 깎아내리며 "당에 의해 악랄하게 추방당한 뒤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을 겨냥해서도 "카멀라 동지 밑에서는 미래가 없다. 그는 우리를 세계 3차 핵 대전으로 몰고 갈 것"이라며 "그녀는 세계의 폭군들에게 결코 존경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동 전쟁을 비롯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도 관련해서도 11월 대선 승리 이후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해리스 부통령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중동 문제는 미국 민주당 내에서 '뜨거운 감자'로 불립니다. 대학가에 번진 가자전쟁 반대 시위에서 드러나듯, 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 정책은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전쟁 이후 아랍계와 유대인들의 표심을 잃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 배우자를 둔 해리스 부통령의 경우에는 이스라엘의 과오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이른바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로 해리스 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은 자국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가자 주민들이 전쟁에 고통받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또 네타냐후 총리와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원의장과 함께 주재했어야 하지만 유세 일정을 이유로 불참하며 거리를 뒀습니다.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해리스 부통령이 이스라엘의 전쟁을 바이든만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2일(현지시각)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 4일차에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일 쇼크로 확전 땐 '해리스 위기'
결국 중동 전쟁의 확전 여부가 미국 대선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입니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는 해리스 부통령이 기존의 이스라엘 정책을 유지한다면 이른바 집토끼인 진보·아랍계·유대인 유권자들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바이든 정부 정책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줄타기에 성공하면 지지를 철회했던 이들의 지지를 다시 확보하고 1~2%포인트로 승부가 갈리는 경합주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확전의 기로에 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중동 정세를 고려하면 해리스 부통령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이번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은 이스라엘이냐 팔레스타인이냐는 양자택일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며 "만약 중동 전쟁이 더 크게 일어날 경우 오일 쇼크 문제도 있기 때문에 집권당 입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다만 해리스의 수락연설을 보면 양쪽 모두를 포용하는, 부담을 덜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예측 가능성이 낮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향이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경합주 중 하나인 미시간은 아랍계 인구가 가장 집중된 지역인데, 이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며 "지난번 경선 때도 이들이 의도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아 기권표를 만들며 정치적 의지를 드러냈는데, 중동 전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돼야 이들이 해리스를 지지할 수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